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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에 물들다/중용, 인간의 맛

중용, 인간의 맛 - 3강. 천명(天命)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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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의 내용 간단 요약 -

 

1. 노자와 중용의 첫 장은 총론으로서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2. 노자의 첫장

   道可道 非常道 (도가도 비상도) - 도를 도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항상스러운 도가 아니다.
   道可道 : 끊임없이 변하는 생성의 도를 도라는 언어, 도라는 관념 속에 집어넣는다(fix).
   常은 불변, 영원(unchanging, changeless)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스러움(constant)을 의미하는 것이다.
   즉, 이는 불변의 긍정이 아닌 변화의 긍정이라고 볼 수 있다.

 

3. 중용의 첫장
   天命之謂性 率性之謂道 脩道之謂敎(천명지위성 솔성지위도 수도지위교)

 

4. 天
   天命(heavenly Mandate) 중국 고대왕조 은殷나라 때까지 구약적, 초월적 의미가 있었으나 주周나라부터 인문화된다.
   天의 의미가 초월적 인격자에서 천지 대자연의 보편적 리법(理法)의 의미로 인문화된다. 天은 대자연(天地)이다.
   즉, 인간을 하나님에 의해서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라 천지의 일부로서 인식한다는 것.

 

5. 命
   命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명령이 아니라, 인간과 천지의 상호교섭mutual prehension을 의미한다.

 

6. 性
   性에 대해서 서양철학은 성악설을 주장하는 홉스, 성선설을 주장하는 루소의 흐름으로 나눌 수 있다.
   자사(子思)는 인간본성에 관한 모든 규정성을 거부한다. 인간이란 존재는 끊임없이 하늘과 교섭하는 과정process일 뿐이다.
   性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태어나서 죽는 순간까지 性을 만들어가야한다. 이 것을 거부하는 것은 죽음일 뿐이다.

 

7. 性, 道, 敎와 중용

    性, Nature, 자연 ----- 道 ----- 敎, Civilization, 문명

   

8. 결론

   性의 문제로부터 인간의 문명(敎)에 대한 문제를 총체적으로 제시를 함으로써 이러한 구도속에서

   인간은 과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문제를 논의하고 있는 것이 중용이라고 할 수 있다.

 

사족. 인간은 인간 스스로의 본성을 규정하는 논의를 계속하고 있다. 
        인간이 관찰자인 동시에 피관찰자인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본성에 대한 논의는 영원한 미궁일 수밖에 없다.

 

 

※ 인문학studia humanitatis은 보편적 인간의 문제이며 지역적 상대주의를 초월한다 ※




- 생 각 -

 

드디어 시작한 본격적인 중용 강의.

 

중용의 첫 장이라는 천명지위성 솔성지위도 수도지위교..어디서 많이 들어봤다 싶었는데 한국교육사 공부하면서 봤던 기억이 난다. 다짜고짜 외웠던 기억만 난다. 그 당시에는 정말 문자의 뜻 그대로 "하늘이 명한 것을 본성이라 하고, 본성을 따라가는 것을 도라고 하며, 도를 닦는 것을 교육이라고 한다."라고 풀이하고 외웠었는데, 이제와서 도올 선생님이 강의를 한 것을 들어보니 내가 몰랐던 많은 뜻이 함축되어 있었구나라는 것을 느낀다.

 

어떤 문화나 사회현상은 그 것이 일어났던 시대와 맥락 속에서 이해해야 된다. 마찬가지로 은銀에서 주周로 넘어오면서 다양한 방면에서 관념적인 것을 탈피해 인문학적인 모습을 띄게 되었는데 그것이 중용에서도 반영되어 있다. 중용의 첫 글자인 天 또한 추상적인 하늘(天)에서 대자연(天)으로 의미가 변했다. 이는 사물을 바라보는 인식의 초점이 좀 더 구체적이고 과학적으로 변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계속되는 命과 性에 대한 논의는 간단하다. 결국 이들은 대자연(天)과의 상호교섭을 통해서 끊임없이 변해간다는 것이다. 고정불변하지 않고 변해가는 것. 그리고 그 변화 속에서 사람이란 어떻게 살아가야하는가에 대해서 논해보겠다... 뭐 이정도로 중용의 첫 구절을 이해해볼 수 있을 듯 하다.

 

몇 글자 되지도 않는 것을 해독하고 이해하는데 이렇게 심오한 뜻이 담겨있을 줄이야. 나는 이런 평범해 보이는 글자를 심오하게 해독한 것을 볼때마다 이런 생각을 한다. 어떤 명사를 종이에 써놓고 (동사도 괜찮다) 뚫어지게 쳐다본 적이 있는가. 종이에 적힌 글자들을 뚫어지게 쳐다보게 되면 문득 드는 생각이 있다. "어? 이 맞춤법이 맞나?" 라는 생각... 물론 그 맞춤법은 맞다. 하지만 한 글자를 오래오래 쳐다보면 그 것에 대한 의심이 생기고 많은 생각이 들게 되는 것이다. 자사(子思)가 어떤 의미로 중용을 썼는지는 누구도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이렇게 복잡해진 논의를 볼 때마다 후대를 거쳐오면서 해석에 해석을 붙여 복잡해진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렇지만 그렇게 심오한 뜻을 받아들여서 나쁠 건 없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새롭고 재밌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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