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예술에 물들다/내맘대로 책 읽기

체호프 단편, 「검은 수사」 분석

반응형

  안톤 체호프 단편선이라는 책에서 「검은 수사」는 꽤나 긴 분량의 소설이다. 책의 절반 정도는 될까? 그리고 그 분량 못지 않게 이 소설이 독자들에게 던지는 질문 또한 상당히 묵직하고 날카롭다. 그 질문의 화두는 '인간의 삶은 무엇일까?' 혹은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일까?' 라는 물음이다. 체호프는 코브린이라는 철학 박사의 삶을 통해서, 그리고 그가 보는 환영, 검은 수사(가톨릭에서 청빈, 정결, 순명을 서약하고 독신으로 수도하는 남자. 수도원에 들어가 수도생활을 한다.)를 통해서 영원히 끝나지 않을 물음을 떠올리게 한다.


-소설의 구조-

  3인칭 전지적 작가시점으로 쓰인 이 소설의 주요한 인물은 셋이다. 시골에서 큰 과수원을 운영하는 '페소츠키'라는 남자와 그녀의 딸 '타냐' 그리고 철학 박사 '코브린'이다. 어려서 부모님을 잃었던 가엾은 코브린을 페소츠키 부녀가 거두어 길러주었다는 설정에 이 소설은 시작한다.


  줄거리는 대충 다음과 같다. 신경 쇠약에 시달리는 박사 코브린은 친구로부터 시골에 가서 쉬라는 말을 듣고 페소츠키네 과수원으로 내려가게 된다. 페소츠키는 지역의 꽤 커다란 과수원을 운영하고 있는 사내로서 현실적인 인물의 전형처럼 보여진다. 그의 딸 타냐 또한 평범한 여성으로 코브린을 흠모하고 있다. 코브린은 시골의 생활에 조금씩 만족을 하게 되고, 우여곡절 끝에 타냐와 결혼을 하게 된다.


  하지만 어느날인가 코브린은 들판에서 '검은 수사'를 보게 되는데, 그는 코브린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천재이며, 세상의 이치를 탐구하기 위해 내려온 사람이며, 신에게 선택된 자이다. 당신처럼 피로,신경쇠약,불안을 떠 안고 사는 사람들로 인해 인류의 미래는 한없이 밝아질 것이며, 그런 것들을 견디지 못하는 것은 그저 평범한 사람으로 되어가는 것 뿐이다.' 라는 말. 이것은 코브란의 신경쇠약 증세에 따른 헛것을 보는 걸로 그려지지만, 사실상 작가(체호프)가 독자들에게 건네는 말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코브란은 결혼 후에, 검은 수사를 더 이상 보지 못하게 된다. 같은 침대에서 잠들던 아내 타샤가 밤중에 일어나 헛소리를 하는 코브린을 보고는 신경쇠약 약을 먹이고, 휴식을 취하게 하고, 연구나 일 따위를 심하게 하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코브란은 이내 정상(?)으로 돌아가지만 본인은 극심한 우울증과 무력감, 패배감에 휩싸이고 만다. 결국 그는 장인어른을 모욕하는 언행을 일삼고, 타샤를 불행에 빠뜨리고 이혼을 하게 된다.


  타샤와의 이혼 후 새로운 여인과 함께 결혼하여 낯선 지방을 여행하던 코브란은 새벽에 오랜만에 나타난 검은 수사를 보고 마지막 숨을 거두게 되는데, 그 때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우리의 삶은 무엇일까?-

  체호프가 이 소설을 통해 우리에게 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일까? 나는 그것이 현실에 안주해버리는 삶, 아니 안주라는 말이 주는 부정적인 뉘앙스를 제거하고, 현실에 적응하는 삶에 대한 절망을 나타내려 한 것이 아닐까 싶다. 체호프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글을 썻다고 알고 있다. 그렇다면 자신이 정말로 하고 싶은 것, 쓰고 싶은 글을 쓰지 못하고, 생계를 위해 포기하거나 고쳐야했던 글들이 많지 않았을까? 그런 글을 쓰는 자신의 삶에 대한 회한(?), 후회(?) 등을 이런 식으로 표현한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꼭 체호프의 삶을 예로 들지 않아도,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꿈을 찾아 쫓는 이의 거침없는 질주와 그로 인한 파멸, 현실에 적당히 안주하는 이의 권태와 무기력함. 이 둘 모두 우리가 원하는 진정한 삶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우리들은 이 둘 중에 하나를, 혹은 둘을 적당히 섞은 삶의 양식을 선택한다. 의식적으로 알든, 모르든 간에 이 둘 사이를 저울질하며 사는 것이다. 둘 모두 어느 것이 무조건 옳다거나 무조건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또한 한쪽을 선택한 사람을 다른 사람이 비난할 수도 없는 문제이다. 이 둘은 모두 우리 삶의 모습들이고, 그것의 선택 또한 개인 고유의 의지와 선택이기 때문이다.


  이 둘 사이를 잘 조절하지 못해서 불행하고 고통받는 사람이 많다. 그리고 내 생각에 그건 인류의 역사에 끊임없이 반복되는 패턴이 아닐까 싶다. 체호프는 이러한 것들을 우리에게 질문으로 던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물론 그는 자신이 코브란의 삶을 선택하고 싶었던 것 같다. 마지막에 죽음을 맞고도 더없이 행복한 미소를 띄고 있는 코브란의 모습에서 체호프의 생각을 조금은 알 수 있지 않을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