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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물들다/시끄러운 이야기

디스패치의 사생활 공개, 정말 알 권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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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디스패치에서 특종을 하나 터뜨렸다. 바로 최근 들어 핫한 연예인 지코와 설현의 열애설을 발표한 것이다. 이들의 열애설은 순식간에 주요 포털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을 차지했고, 하루종일 1~2위를 차지함으로써 그 관심과 열기가 식을 줄 몰랐다. 어엿한 두 사람의 성인이 서로에게 호감을 갖고 연애를 한다는 사실이 그렇게 핫이슈가 될만한 것인가. 그러나 내 개인적인 생각과는 달리 지코와 설현이라는 검색어는 실시간 검색어에 고정이라도 된 듯, 몇 시간째 그대로였다. 그러니 나 같은 사람도 궁금해서 기사를 검색해볼 수 밖에 없지 않은가.


  사실상 기사의 내용은 그 자체로는 별로 쓸 만한 것이 없다. 얼마 전, TV 프로그램에서 말실수로 인해 네티즌들의 뭇매를 맞았던 설현이 힘들 때면 남자 친구인 지코가 챙겨주었으며, 이런저런 만남의 과정에서 서로 의지가 되어 연인으로 발전했다는 것이었다. 이들은 서로 바쁜 스케쥴을 소화하면서도 틈틈이 시간이 날때마다 자동차에서 혹은 지코의 집에서 만났다는 것이었다. 세상 사는게 다 그렇듯 힘들때면 정이 가는 누군가에게 의지하는게 당연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나는 그 기사의 내용보다는 그곳에 실린 몇 장의 사진들을 보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개인의 인권 존중 따위는 없는 무례한 파파라치들


  내가 깜짝 놀란 사진은 설현이 택시에서 내려 어떤 건물로 달려가는 몇 장의 사진을 이어붙여 움직이는 것처럼 만들어 놓은 사진과 건물 안에서 숨을 몰아쉬며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몇 장의 사진이었다. 나는 이 몇 장의 사진을 보고, 과연 이 디스패치라는 신문사가 이래도 되는 것인가? 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물론 두 사람은 서로가 연예인이라는 직업적인 이유로, 이 둘의 연애가 비밀스러울 수 밖에 없다는 것은 인정해야 한다. (거기에 얽힌 소속사와 광고주 간의 계약 문제, 팬클럽과의 문제는 여기에서 논외로 한다.) 하지만 두 사람이 연애를 한다는 사실 자체가 다른 사람에 의해서 비난 받거나 조롱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 두 사람의 자연스러운 호감은 어떠한 잘못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디스패치에서 발표한 기사에 실린 사진들은 어떠한가? 모자를 눌러쓰고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채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건물로 뛰어가는 모습, 게다가 그것도 뒷모습을 찍은 사진을 올렸다. 그것도 모자라 몇 장의 사진을 이어 붙여 급하게 뛰어가는 느낌의 짧은 영상을 만들었다. 이러한 사진을 본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는 개인적으로 모욕감을 느꼈다. 내가 그 사진 속의 인물이라면 (연예인이라는 뜻이 아니다.) 어마어마한 수치심을 느낄 것 같았다. 나는 개인적으로 언론의 이러한 행태가 굉장히 비열하다고 생각한다. 두 사람이 아무리 세상의 관심을 많이 받는 연예인이라고 하더라도, 그 이전에 하나의 개인이거늘, 디스패치가 한 행동은 개인의 인권 존중 따위는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없는 무례한 파파라치라고 밖에 할 수 없다.


이것은 과연 국민의 알 권리인가?


  일부 사람들은 이러한 개인 사생활의 허락받지 않은 무례한 공개를 국민의 알 권리이기 때문이라며 언론사의 이런 행태를 옹호하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그래서 국민의 알 권리에 대해서 알아봤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알 권리는 정보의 자유로운 유통과 국민의 참여를 활성화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국가의 간섭을 받지 않고 국민과 언론이 정보를 수집하는 동시에 국가기관이 보유한 정보의 공개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다. 이는 국민 개개인이 중요한 결정을 내리거나 자신의 복지를 위해 충분히 정보를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논리를 바탕으로 한다. 이때 알 권리의 대상이 되는 정보는 대체로 ① 주권자인 국민이 국정을 판단하는 데 필요한 정보 ② 국민이 사회인으로서 안전하고 건강하게 문화적인 현대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필요한 정보 ③ 국민이 인격상 자기 달성을 위해 필요한 정보를 총괄하는 것을 말한다.


  위 단락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애초에 알 권리라는 개념이 발생한 건, 국가가 보관 또는 관리하는 정보를 국민과 언론이 자유롭게 열람 또는 공개 요구를 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시작했다. 이것은 우리 나라에서 처음 알 권리라는 내용이 등장했다는 다음 맥락을 읽어봐도 상통한다.


  우리나라에서 알 권리가 언론에 처음 등장한 것은 1964년 《경향신문》에서였다. 당시 신문기자가 군·경에게 폭행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경향신문》은 이 사건을 국민의 알 권리 침해라는 내용으로 기사화했다. 이후 언론계는 언론윤리강령에 알 권리 조항을 두기도 하고 '알 권리 주간'을 만들기도 하는 등 알 권리 보장을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이와 함께 학계에서 알 권리에 대한 연구도 증가하고,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사회적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오늘날의 알 권리로 인식되는 기틀이 마련된다.


  이후에 알 권리의 대상이 정부나 기관에게서 개인으로 조금씩 옮겨졌는데, 그에 따른 여러가지 문제가 있어왔고, 어느 정도가 적정한가는 아직도 논의 중이라고 한다.


  이때 알 권리에 근거를 둔 취재·보도 활동이 어느 정도 허용되는가 하는 문제가 발생하는데 이에 대한 해답은 그 '사안의 특성'과 직결된다고 하겠다. 즉 사안이 공적인 것이며 언론 보도를 통하지 않고는 알 수 없는 경우에는 비록 그 내용이 개인의 사적 생활에 관련된 것이라도 보도를 해야만 하는 의무가 있다.


  과연, 디스패치가 밝힌 이 열애설이 이러한 조건에 부합할만큼 공적이고 중요한 내용인가? 이 대목을 진지하게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


궁금하다고 모든 것이 알 권리에 속하는 건 아니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것들을 궁금해한다. 옆집에서 나는 소란스러운 소리를 듣고 무슨 일인지 궁금해하고, 시험을 보는 도중에 옆자리에 앉은 친구의 답안지가 궁금하고, 내가 사는 식품이나 의류들의 원가가 얼마나 되는지 궁금해하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고 살고 있는지 궁금해하고, 주변에서 일어난 크고 작은 사건, 사고들에 대해서 궁금해한다. 이렇게 살면서 궁금해하는 수많은 것들을 모두 다 알 권리라는 이름하에 밝혀내고 공개할 수 있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된다.


  나는 첫째로 이번 스캔들이 (또는 그동안 디스패치의 열애설 기사들이) 이러한 알 권리에 충족하는지 그것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나는 이러한 것들이 알 권리에 속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백번 양보해서 이러한 스캔들을 알 권리에 포함시킨다고 하더라도, 이들이 이번 기사로 발표한 것처럼 개인의 인권을 무참하게 짓밟는 그런 류의 내용이나 사진들을 보도해서는 결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파파라치들의 사생활 침해에 대한 처벌의 수위가 어느 정도인지는 잘 모르겠다. 또한 피해 연예인과 디스패치간의 향후 일도 어떻게 전개될지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이러한 파파라치 언론에게 계속해서 피해를 입지 않기 위해서는, 피해자 개인 또는 관련된 집단들이 법적으로 가능한 대응 수단들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관련 항목에 대해서는 강력 대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 이상, 이들의 이러한 행태는 언제까지도 반복될 수 밖에 없다.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이 없는 언론은 언론이라고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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