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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에 물들다/막눈이 영화광

뻔하지만 사랑스러운 로맨스 「미 비포 유」(Me Before You,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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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한 영화 소개


  오랜만에 영화를 보았다. 제목은 미 비포 유(Me Before You)이고, 영어 뜻은 "너를 만나기 이전의 나"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 영화의 감독은 테아 샤록(Thea SHARROCK)이고, 필모그래피를 보니 아직 많은 영화를 연출하지 않은 감독인 것 같다. 남자 주인공은 샘 클라플린(Sam Claflin)으로 이 영화에서는 오토바이 사고를 당해 얼굴쪽 감각과 엄지, 검지 손가락만 겨우 움직일 수 있는 사지마비 장애인 '윌' 역으로 나온다. 필모그래피를 보니 캐리비안의 해적과 헝거게임 등 유명한 작품에 출연하였으나, 나에게 친숙한 배우는 아니다. 여자 주인공은 에밀리아 클라크(Emilia Clarke)로 이 영화에서 '윌'을 6개월 동안 돌보는 간병인 '루이자' 역으로 나온다. 사실상 여자 주인공 에밀리아 클라크의 솔직하면서 통통 튀는 매력이 이 영화의 8할 이상을 차지한다. 촌스러운 땡땡이 옷, 썰렁한 농담, 할 말은 다하는 시원함, 감정을 숨기지 않는 솔직함, 꾸밈없는 예쁜 미소와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눈썹과 이마의 갈매기까지. 이 영화는 루이자의 매력으로 가득하다.


[아래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으니 읽기를 원치 않으면 뒤로 가기 버튼을 눌러주세요.]


  간단히 줄거리를 이야기하자면 다음과 같다. 6년간 일하던 카페가 갑작스럽게 문을 닫는 바람에 여자 주인공 루이자는 다른 일거리를 찾는다. 그녀에게는 가족을 부양해야할 의무가 있었기 때문이다. 루이자는 지역의 부호 트레이너가(家)에 간병인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곳에 지원을 한다. 면접 시험에 합격한 루이자는 오토바이 사고로 인해 척수가 손상되어 사지가 마비된 윌 트레이너를 6개월 동안 간병하는 일을 맡게 된다. 처음 얼마간 윌은 루이자를 매몰차게 대하는데, 그 이유는 손가락 하나 마음대로 까딱거릴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타인이 동정하거나 연민을 느끼는 일을 달가워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불의의 사고를 당하기 전 윌은 스키, 제트보드, 다이빙 등 익스트림 스포츠를 마음껏 즐길 정도로 건강한 몸을 가지고 있었고, 이제는 그런 일들은 커녕 혼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그 상실감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윌은 언제나처럼 루이자를 매몰차게 대하는데, 루이자는 화가 나서 "당신의 인생이 망가졌다고, 내 인생까지도 불행하게 만들지는 말아달라." (정확한 대사는 아닙니다.)고 말한다. 윌은 다친 자신을 동정하기보다 솔직하게 생각을 표현하는 루이자에게 호기심을 느끼게 되고, 마음의 문을 조금 열게 된다. 그 이후로 둘은 영화를 함께 보고, 루이자의 생일 파티에 함께하는 등 조금씩 가까워지게 된다.

  (또 한번) 그러던 어느날, 루이자는 윌을 찾아온 낯선 사람이 스위스에서 유언 관련된 일을 하는 변호사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사실 윌은 사고를 당하고 난 뒤, 6개월의 유예기간 후에 안락사를 하길 원했던 것이다. 충격을 받은 루이자는 윌의 생각을 돌려놓겠다고 다짐한다. 루이자는 남은 시간 동안 윌이 세상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고자 노력한다. 그들은 경마장을 찾고, 음악회를 찾아간다. 6개월이 끝나갈 때쯤, 그들은 윌이 가고 싶어했던 프랑스로 마지막 여행을 떠난다. 그러던 중, 둘은 서로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여행의 마지막날, 해변에서 루이자는 윌에게 모든 것을 알고 있다며 마음을 돌릴 것을 권유한다. 하지만 윌은 자신의 생각을 굽히지 않는다. 오히려 윌은 루이자에게 스위스에 함께 가서 자신의 마지막을 지켜봐달라고 말한다. 윌이 마음을 돌릴 것이라고 생각했던 루이자는 실망하고, 영국으로 돌아오자마자 간병인을 그만둔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결국 루이자는 윌의 바람대로 그의 마지막을 함께 한다. 윌의 죽음 후에 루이자는 윌이 가고 싶어했던 프랑스 노천 카페를 찾게 되고, 그곳에서 윌이 남긴 편지를 받게 된다. 윌은 루이자의 명의 앞으로 얼마간의 돈을 남겨두었으며, 그것을 가지고 루이자가 자신만의 인생을 당당하게 살아갈 것을 부탁한다. 루이자는 윌의 조언대로 근처 향수집을 방문하면서 영화는 끝나게 된다.


사랑스러운 여자 주인공 루이자


  이 영화는 조금 뻔한 영화다. 몸이 불편한 주인공과 그를 돌보는 간병인과의 사랑 이야기라는 소재는 그다지 특별할 것이 없다. 그나마 이 영화가 조금이나마 덜 뻔한 건, 윌이 루이자의 사랑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마음을 돌리지 않고, 안락사를 택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그마저도 그가 부유한 집의 자식이었기에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진작 죽었을 것이라는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윌의 마지막 결정을 제외하면,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별다른 위기나 전환 없이 둘이 만나 가까워지는 로맨스 영화의 전형적인 패턴을 보인다. 감독은 조금 단조로울 수 있는 영화의 패턴을 여자 주인공의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훌륭하게 커버했다.

  나로서는 에밀리아 클라크(Emilia Clarke)라는 배우를 처음 봤다. 하지만 그녀의 외모는 그동안 보아왔던 외국 영화의 여자 주인공들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익숙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그녀가 보여준 통통 튀는 매력은 관객으로 하여금 그녀의 매력에 빠지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어버린다. 언제나 그렇듯 로맨스 영화 여자 주인공의 가장 큰 매력인 '유쾌함'과 '솔직함'으로 그녀는 똘똘 무장해있다. 불행이나 고난에 굴하지 않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자신의 의견이나 감정을 솔직하고 당당하게 표현하는 그녀의 모습은 무척이나 아름답다. 게다가 약간은 오버스러운 표정 연기까지 보고 있으면 웃음이 날 정도로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이야기의 핵심은 인물의 감정선 따라가기


  내가 생각하기에 이 영화에서 핵심은 인물의 감정선을 따라가는 것이다. 두 인물의 감정선은 아래처럼 세 가지 정도로 간단하게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윌이 루이자를 매몰차게 대한다. 루이자도 윌이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첫 만남에서 윌은 루이자에게 관심이 전혀 없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6개월의 유예기간을 보낸 후에 안락사를 원했기 때문이다. 사지마비가 찾아온 그의 삶에서 희망이란 없다. 윌은 비관적이며 루이자를 냉대한다. 물론 루이자도 자신을 차갑게 대하는 윌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둘째, 하지만 둘은 서로에게 마음을 열고, 결국 사랑에 빠진다. 마음을 열기 시작하면야 사랑에 빠지는 것이야 당연한 일인만큼, 어떻게 마음을 열었는가에 초점을 맞춰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 윌이 마음을 열게 된 계기는 위에서 언급한 대로 루이자가 "당신의 인생이 망가졌다고, 내 인생까지도 불행하게 만들지는 말아달라."고 말했을 때다. 사고 이후 비관적인 생각으로 가득찬 윌이었지만, 이제껏 자신의 그런 말과 행동들이 다른 사람을 힘들게 할 것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을 것이었다. 그런 그에게 루이자는 '너는 너, 나는 나'라고 말한다. (실제로 이런 대사를 한 건 아닙니다.) 나는 이 대목이 꽤나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윌이 사고를 당한 후 주변 사람들이 그에게 보였을 감정은 무엇보다 연민이나 동정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자존심 강한 윌은 주변 사람들의 이러한 시선이 못마땅했을 것이다. 이는 영화 속에서 "날 동정하지 마."라는 그의 대사에서도 드러난다. 이는 건강한 신체를 갖고 있었던 잘나가고 자신만만했던 그에게 자신은 이제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즉 다른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전혀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는 상실감을 안겨줬을 것이다. 하지만 루이자는 이런 윌을 섣불리 동정하기보다는 그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당신이 자신의 인생을 살 듯, 나도 내 인생을 살 권리가 있으니, 내 인생을 불행하게 만들지 말아달라"고 한다. 이 순간, 윌은 루이자가 적어도 자신을 동정, 연민하고 있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건 아닐까 싶다. 그 후로 둘은 마음을 여는데, 이 과정에서도 루이자는 윌이 하고 싶은 일을 하기보다는, 자신이 해보고 싶었던 일을 윌에게 함께하자는 식으로 제안을 하게 된다. 이는 윌에겐 커다란 차이였을 것이다.


  셋째, 윌의 마지막 부탁을 루이자는 거절했지만 결국 다시 들어준다. 루이자는 자신의 진심을 보여주고도 윌의 결정을 돌리는데 실패한다. 그만큼 윌의 생각은 확고했던 것이다. 윌은 자신이 모든 것을 갖고 있었던 건강했던 시절을 잊지 못하고, 결국 안락사를 원한다. 혹자는 윌이 자신이 현재 갖고 있는 것에 집중하기보다 잃은 것에 집중했기에 그런 결정을 한 것이라며,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가 그 상황이 되어보지 않은 이상, 그의 선택이 옳고, 그르다는 평가의 말을 할 수는 없다. 모든 것을 잃고도 살 수 있는 사람이 있고, 모든 것을 얻고도 살 수 없는 사람이 있다. 루이자는 자신을 내버려두고 죽음을 택하는 윌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결국 그의 확고한 결정 앞에 그의 마지막을 함께하기 위해 스위스로 오게 된다. 이는 어찌되었던 루이자가 윌의 마음을 진정으로 이해해준 순간이 될 것이다.


  영화는 가족이나 다른 일에 얽매여 자신의 인생을 살지 못하는 루이자를 위해 윌이 어느 정도의 예금을 물려주고, 마음을 담아 남긴 편지를 읽으면서 끝난다. 그 이후로 루이자는 자신의 인생을 살 수 있었을까? 윌이 말한대로 루이자가 윌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이 죽음으로 가기 전 마지막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이 당신이라는 선물이었다고 한다면, 윌이 루이자에게 준 선물은 루이자의 당당한 인생 전체가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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