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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에 물들다/막눈이 영화광

호랑이를 닮은 배우 최민식의 「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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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추석 연휴 때 TV에서 방영해준 영화 「대호」를 보았다. 나는 사실 TV로 영화를 보는 것을 즐겨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TV로 방영되면 영화가 방송에 불필요한 부분을 편집한다는 점과 영화를 중간으로 나누어 1부와 2부 사이에 광고를 해대는 등 영화의 몰입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 TV에서 영화를 방영하게 되면 오랫동안 집중하지 못하고 채널을 돌리고 만다. 그런데 이 「대호」라는 영화는 처음에 잠깐 영화를 봤는데도 특유의 긴장감으로 끝까지 영화를 볼 수 있었다.


  이 영화는 도포수(여럿이 사냥할 때 사냥을 지휘하는 우두머리) 최민식과 지리산 호랑이 산군 사이의 이야기다. 영화를 보면 이야기의 흐름에서 일제가 등장하고, 그 일제가 우리나라 산짐승들을 무차별하게 잡아가고, 지리산의 우두어미인 호랑이까지 사냥하려는 모습을 통해 일제가 조선에게 행한 만행과 끝까지 살아남아 용맹함을 떨치는 산군을 통해 조선의 기백 등을 비유해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나는 그런 비유적인 설정을 제외하고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도포수와 호랑이의 삶과 복수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최민식이 연기하는 배역은 언제나 살아있다.


  이야기의 시작은 도포수와 호랑이의 만남에서 시작한다. 영화는 도포수 최민식이 호랑이를 쫓아가다가 맞딱뜨리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도포수는 호랑이를 향해 총을 겨누고, 호랑이는 도포수를 향해 달려든다. 그리고 들려오는 총성 한발과 함께 영화는 시작한다. 영화의 나중에 밝혀지는 이야기지만 이 싸움의 승자는 도포수가 된다. 도포수는 달려드는 호랑이의 목덜미에 총알 한 발을 명중시키고 비틀거리는 호랑이의 오른쪽 눈가에 또 한발을 명중시켜 호랑이를 사냥하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호랑이가 쓰러지자 저 멀리 눈밭 위로 두 마리의 아기 호랑이가 달려온다. 그 중 한 마리는 죽은 어미를 살펴보지만, 다른 한 마리는 어미 앞에 당당하게 지키고 서서 어미를 사냥한 도포수를 향해 이빨을 드러낸 채로 울음소리를 낸다. 이 아기 호랑이가 산군이며 대호가 된다. 이 울음소리는 복수를 다짐하는 울음소리다. 자신의 어머니를 사냥한 인간을 향한 복수의 울부짖음이 도포수와 대호의 인생을 이어주는 연결고리가 되었다.


▲젊은 시절 도포수 최민식은 호랑이 사냥을 위해 산을 헤집고 다닌다.


  최민식을 뒤따라온 구경(정만식)은 새끼 호랑이 두 마리마저 사냥하려고 하지만, 만덕(최민식)은 이를 제지한다. 그리고는 어미를 사냥당한 불쌍한 새끼 호랑이 두 마리를 동굴에 넣어두고, 꿩과 같은 사냥감들을 사냥해 동굴 앞에 놓아두어 먹이를 주며 이들을 키운다. 어미를 사냥한 데 들었던 불편하고 미안한 마음 때문이었다.


▲만덕의 뒤를 이어 도포수가 된 구경(정만식)의 악역 연기는 조금 아쉽다.


  시간이 흘러, 최민식은 크게 성장한 대호를 쫓는다. (자신이 그렇게 키우던 호랑이를 다시 사냥하기 위해 쫓아다니는 모습이 인물의 감정선으로 잘 이해되지는 않았다.) 대호를 쫓아 무리에서 이탈해 혼자 외진 곳까지 도달한 만덕은 장전을 한 채로, 온 신경을 집중한다. 순간 들리는 바스락 거리는 소리를 듣고 만덕은 그곳을 향해 총을 발포한다. 애석하게도 만덕은 대호가 아니라, 산나물을 캐던 자신의 아내를 스스로 쏘아버린 것이다. 아내는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만덕은 그 후로 총을 내려놓게 된다.


▲포스 넘치는 최만덕을 보라.


  시간이 흘러, 조선은 일제가 지배하게 되고, 포수들은 일제의 지시를 받고 사냥감들을 사냥해 생계를 이어나가는 세상이 되었다. 도포수 만덕은 총을 내려놓고, 산속에서 하나뿐인 아들 석이와 함게 산나물을 캐며 어렵게 살아간다. 아들 석이는 자신의 생활에 불만이 많지만 아비의 불같은 성격에 자신의 생각을 꾹꾹 누르며 아비와 함께 산다. 


  일제는 조선 땅을 완전히 정복하기 위해, 지리산의 정신적인 기둥이라고 할 수 있는 대호의 사냥을 명한다. 하지만 구경을 도포수로 한 사냥은 번번히 실패하기만 한다. 정해진 기한이 얼마남지 않은 일제는 만덕을 포섭하려고 하나, 만덕은 이를 줄기차게 거절한다. 


▲ "아버지는 좋은 시절 다 보내놓구 저는 뭔 죄가 있어 이리 산대유?"는

석이의 말에 틀린 데는 없다-_-....


  계속되는 실패에 결국 일제는 산을 파괴하면서까지 대호를 사냥하기로 하지만, 대호는 총상을 입으면서까지 일본군을 물리친다. 그러던 와중에 만덕의 아들 석이는 대호를 잡아 한 몫을 챙겨서 장가를 들겠다는 생각으로 일본군에 지원한다.


일제의 스케일이 다른 호랑이 사냥


  다음 대목이 내가 생각하는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다. 석이는 대호 사냥을 나서 대호를 직접 보게 되지만 그 용맹함에 압도되어 손하나 까닥할 수 없게 된다. 대호는 일본군들을 사냥하고, 바위에 달라붙어 죽은체(?)하는 석이를 보았으나 석이를 해치지 않고 그냥 지나가려고 한다. 그동안 산에서 만덕과 동고동락하는 석이를 보고, 그의 자식임을 이미 알고 있었을터, 그를 죽이지 않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석이의 뒤쪽에서 부상을 입은 일본군이 대호를 향해 총을 겨누자 그를 공격하기 위해 달려든다. 하지만 석이는 대호가 자신을 공격하려는 줄 알고 총을 쏘게 된다. 대호는 옆구리에 총상을 입고 자신의 목숨을 위협하는 석이를 앞발로 공격한다. 이 부분은 수십년 전, 만덕이 대호의 어미를 사냥하던 모습과 오버랩된다. 수십년 전, 만덕은 눈내리는 날 먹고 살기 위해서, 그리고 호랑이를 눈앞에 둔 사냥꾼으로 살아남기 위해서 대호 어미를 사냥했다. 그리고 수십년이 지나, 대호는 살아남기 위해서 만덕의 아들 석이를 공격했다. 만덕과 대호는 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행해야만 하는 서로의 일들이, 서로의 처지가 비슷함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만덕과 대호는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는 유일한 존재다.


  석이는 가늘게 생명을 끈을 놓지 않지만, 사냥이 끝난 후에 나타난 늑대들에게 끌려 늑대굴로 가게 된다. 늑대굴에는 수십마리 늑대들이 시체를 파먹고 있는 중이었다. 늑대들이 석이를 파먹으려고 하는 순간, 대호가 나타나 석이를 구한다. 그리고 대호는 석이를 만덕의 집앞에 데려간다. 만덕은 피칠갑이 되어 나타난 석이를 보며 오열한다. 대호는 그런 만덕을 뒤로 하고 산속으로 사라진다. 같은 처지에 있는 사냥꾼에 대한 최후의 예의였을 것이다. 

  

  끈질기게 이어진 복수의 칼날과 상호 이해의 끈을 잘라낼 때가 되었다. 만덕은 석이를 천으로 감싸 방에 뉘인후, 집에 불을 붙이며 장례를 치른다. 대호는 일제에 사냥당해 죽은 새끼를 동굴 깊숙한 곳에 숨겨둔다. 둘은 눈보라가 몰아치는 절벽 끝, 최후의 싸움터에서 만난다.


▲맨손으로 거친 산을 오르는 만덕


  결국 둘은, 수십년간 이어져오던 복수를 완성한다. 대호는 만덕에게 어미의 복수를, 만덕은 대호에게 아내와 아들의 복수를 한다. 그 복수의 끝은 눈보라가 몰아치는 절벽에서 둘이 함께 끝을 모르는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것이다. 모든 걸 잃은 만덕과 대호에게 더 이상 살아있는 건 의미가 없었을 지도 모른다. 그렇게 영원한 복수의 대상이자, 서로를 이해하는 고독한 두 사냥꾼의 대결은 막을 내린다.


-감독 : 박훈정

-주연 : 최만덕(최민식)


★★★★


  영화가 끝이 나고도 왠지 모를 울림을 준다. 고독함을 온 몸에 짊고 살던 한 인간과 한 맹수의 이야기. 굳이 일제에 대한 비유를 되새기지 않더라도, 인간의 맹수에 평생에 걸친 인연의 끈의 어떻게 끝나는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는 그런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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