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고생(경민)이 다리 위에서 투신 자살했다. 그러자 남겨진 사람들은 그제서야 묻기 시작한다. 그리고 찾기 시작한다. "대체 이 아이를 죽게 만든 사람이 누구야?"라고. 그녀의 죽음 뒤에 남겨진 사람들은 그녀를 죽음으로 내몬 것은 절대 자신이 아니라며 회피하기 급급하다. 하지만 그녀가 죽기 전 마지막을 함께 했던 또 한 명의 여고생(전여빈, 영희)은 주위의 냉담한 시선을 한 몸에 받을 수 밖에 없다. 영희는 억울함을 호소한다. 사실일까? 과연 그녀의 죽음으로 인한 죄값을 치를 이는 누구일까?
영화 죄 많은 소녀의 영어 제목은 After My Death이다. 때로는 한글 제목보다 영어 제목을 보는 것이 핵심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될 때도 있다. 이 영화의 경우도 그렇다. 다들 알다시피 이 영화의 제목은 "죄 많은 소녀"이다. 그리고 포스터엔 대문짝만하게 전여빈, 영희가 인쇄되어 있다. 마치 영희가 죄 많은 소녀다. 혹은 소녀일까? 라고 관객들에게 묻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가 말하고 싶은 바는 자살한 여고생(경민)의 죽음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 것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한 사람의 죽음 뒤에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로 봤다.
이 영화에 대한 호평 가운데 배우에 대한 칭찬을 빼놓을 수는 없다. 영희 역을 맡은 전여빈 배우는 놀랄만큼 섬뜩한 연기를 선보였고, 엄마 역을 서영화 배우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나는 지금 여기에서는 그들의 연기에 대해서 논하기보다는 이 영화가 말하는, 죽음 뒤에 남겨진 모습들에 대해서 좀 더 초점을 맞춰 생각해보고자 한다.
시작해보자. 한 여고생(경민)이 자살로 인해 죽는다. 왜 그럴까? 수많은 요인들이 복잡하게 섞여있을 것이다. 영화 속의 여러 인물들은 경민이 자살한 이유를 나름대로 추측한다. 학업 스트레스(교무부장), 평소 우울하고 친구들하고 잘 어울리지 못했다(담임), 영희를 좋아한다면 죽음으로 증명해봐라(한솔) 등등. 하지만 모두 추측일 뿐이고 경민 자신의 말은 아니다. 경민 자신의 말은 이사 도중에 발견된 그녀의 유서에 적혀있지만 영화는 그 내용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저 영희를 입을 빌어 이렇게만 말할 뿐이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죽을만해서 도저히 말릴 수 없었다."고.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서 말하고 싶은 바는 "경민이 왜 죽었는가?"에 대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당장 그 다음에 이어지는 질문은 "그렇다면 경민은 누가 죽였는가?"라는 질문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여러 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마지막에 함께 있었던 영희일수도, 정말 죽어보라고 말한 한솔일수도, 바빠서 가정을 잘 돌보지 못한 부모일수도, 과한 학업 스트레스를 안긴 학교와 교육체제일수도, 알게 모르게 경민을 미워하고 시기했던 학교 친구들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 또한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한 사람의 죽음 이후에 발생할 수 밖에 없는 "책임의 문제"라고 본다. 맞다. 나는 이걸 "희생양의 문제"로 봤다.
희생양의 네이버 국어 사전에 의한 뜻은 다음과 같다. 1.희생이 되어 제물로 바쳐지는 양. 2.다른 사람의 이익이나 어떤 목적을 위하여 목숨, 재산, 명예, 이익 따위를 빼앗긴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그러니까 경민이 죽고나서 남겨진 사람들은 자신이 경민을 죽음으로 내몬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어떤 희생양이 필요했다. 그 희생양이 모든 걸 뒤집어쓰고, "맞아 쟤 때문에 경민이가 죽었어."라는 역할을 감당해준다면 '나'는 그 책임과 죄책감에서 조금 자유로워지게 된다. 이 영화에서는 그 희생양 역을 맡은 이가 바로 마지막을 함께 했던 영희였다.
남겨진 사람들은 영희를 의심한다. 경민을 죽인 것은 바로 너라고. 그래야 자신들의 마음의 짐을 덜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영희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조롱하고, 책상과 서랍을 뒤지며, 집에 몰래 찾아와 신발을 찢으며 영희를 욕한다. 억울한 영희는 자신이 그런 것이 아니라고 항변하지만 아무도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이미 사람들은 영희가 그런 것이라고 기정사실화해서 받아들이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행위가 정당하다는 듯이 다 알고 있으니까 말해보라고 재촉하며, 어른들이 너를 많이 배려해주고 있는데 너는 왜 니 생각만 하느냐며 뺨을 후려치고, 영희를 괴롭혀대면서 사진을 찍어댄다.
결국 영희는 경민의 장례식장에서 독극물을 들이마신다. 급히 응급실로 옮겨지지만 성대가 손상돼 말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그러자 그때서야 사람들은 영희의 말을 믿어준다. 그녀가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경민은 내가 죽인게 아니야"라고 행동을 할 때에서야 그 말에 반응을 한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대목이 주목할만하다. 학교에서 친구들은 그렇다면 과연 누가 경민을 죽인거야?라는 질문을 짊어질 또 다른 희생양을 찾아낸다. 이름 모를 어느 한 여고생을 화장실에서 두들겨 패는 장면이 바로 그것을 뜻한다. 사실 이들은 모두 경민의 죽음에 어느 정도 책임이 있지만 어쨌든 확실히 모든 죄를 짊어질 또다른 희생양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영희는 그 여학생의 뺨을 후려치다가 나중엔 그녀를 안아준다.
그리고 희생양에서 돌아온 영희는 복수를 시작한다. 담임을 성추행범으로 몰도록 일을 꾸미고, 무엇보다 여러가지 방법으로 자신을 괴롭혔던 경민의 엄마를 찾아간다. 그리고는 식당에서 식사를 하며 목구멍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로 이렇게 말한다. "오늘밤 내가 죽고나면 내일 사람들이 물어올 때 잘 대답해주실시라고." 자신의 목숨을 걸고서 경민의 엄마에게 똑같은 복수를 하려는 것이다. 압권은 다음 장면이다. 그 말을 들은 경민의 엄마가 식당 칼로 자신의 심장을 찌른다. 마치 "그런 꼴은 볼 수 없다. 내가 너보다 먼저 죽어버릴 것이다."라고 외치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어떤 일에 대한 책임이 내게도 있을 때, 가장 손쉬운 방법은 그것은 남에게 떠넘기는 것이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이런 일들을 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렇게 떠넘겨진 사람의 고통에 대해선 무감각한 것이 현실이다. 오히려 그 모든 것들을 짊어지게 된 사람을 향해 그럴만하다며 손가락질 해댄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나는 정말로 그 일에 책임이 없다는 최면을 계속 거는 것이다. 마치 그것이 진실이기라도 한 것처럼.
한발만 물러서 생각해보면 이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 가운데 경민의 죽음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롱루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입시 제도가 그랬고, 학교 운영이 그랬고, 담임이 그랬고, 가정이 그랬고, 친구들이 그랬고, 영희가 그랬고, 한솔이 그랬다. 그 어떤 것을 원인으로 물고 늘어져도 이상할 것이 없다. 이 영화에선 특별히 영희가 마지막을 함께 했다는 이유만으로 "재수없게도" 걸려버리고 만 것일 뿐. 영희가 아니었더라도 남겨진 사람들은 또 다른 희생양을 만들어 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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