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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에 물들다/내맘대로 책 읽기

[120916]니코스 카잔차스키-그리스인 조르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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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꽤 오랜 간 잠을 청하려고 애쓰며 생각했다. 내 인생은 한갓 낭비에 지나지 않는다. 걸레를 찾아 내가 배운 것, 내가 보고 들은 것을 깡그리 지우고 조르바라는 학교에 들어가서 저 위대한 진짜 알파벳을 배울 수 있다면 내 인생은 얼마나 다른 길로 들어설 것인가! 내 오관과 육신을 제대로 훈련시켜 인생을 즐기고 이해하게 된다면!


-생각에 잠긴 채 나는 길을 따라갔다. 나는 인간의 고통에 따뜻하게, 그리고 가까이 밀착해 있는 이들을 존경했다. 오르탕스 부인이 그랬고, 과부가 그랬고, 슬픔을 씻으려고 바다에 용감하게 돌을 던진 창백한 파블리가 그랬고, 양의 목을 따듯이 과부의 생멱을 따라고 고함을 지르던 델리(카테리나)가 그랬고, 남들 앞에서는 울지도 말도 하지 않던 마브란도니가 그랬다. 나 혼자만 발기 불능의 이성을 갖춘 인간이었다. 내 피는 끓어오르지도, 정열적으로 사랑하지도, 미워하지도 못했다. 나는 모든 것은 팔자소관이라고 주장하면서 겁쟁이로 사태를 바라잡아 보려고 했던 터였다.


-내겐 담배가 없었다. 그래서 돈을 주마고 해 보았다. 그러자 양치기는 화를 내었다.

  "돈 같은 건 악마나 물어 가라고 그래요! 그걸 가지고 뭘 합니까. 내 인생살이가 지긋지긋하다고 하지 않았어요? 나는 담배가 피고 싶을 뿐이에요."

-어둠이 내려 책을 읽을 수 없었다. 나는 부처, 하느님, 조국, 이상, 이 모든 허깨비들에게서 풀려나야겠다고 생각했다.


-"…… 여든으로 합시다. 두목, 우습겠지만 웃을 필요는 없어요. 이게 사람이 자유를 얻는 도리올시다. 내 말 잘 들어요. 터질 만큼 쳐넣는 것 이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금욕주의 같은 걸로는 안 돼요. 생각해 봐요. 두목. 반쯤 악마가 되지 않고 어떻게 악마를 다룰 수 있겠어요?"


-"두목, 성모님이 왜 울고 있는지 아시오?"

 "모르겠는데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라서 그래요. 내가 성상 그리는 화가였다면 눈도 코도 귀도 없는 성모를 그리겠소. 너무 불쌍해서 말이오."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나는 조르바라는 사내가 부러웠다. 그는 살과 피로 싸우고 죽이고 입을 맞추면서 내가 펜과 잉크로 배우려던 것들을 고스란히 살아온 것이었다. 내가 고독 속에서 의자에 눌러붙어 풀어 보려고 하던 문제를 이 사나이는 칼 한 자루로 산속의 맑은 대기를 마시며 풀어 버린 것이었다.


-내 딴에는 자기 위안의 한 경지에 도달했답시고 한번 과부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다. 조르바는 그 긴 팔을 쑥 내밀어 손바닥으로 내 입을 막아버렸다.

  "닥쳐요!"

  그가 구겨진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닥쳤다. 부끄러웠다.



-조르바의 침묵 때문에, 영원한 것이지만 필경은 역시 하릴없을 터인 질문이 다시 한번 내 내부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다시 한번 내 가스은 고뇌로 가득했다. 세계란 무엇일까? 나는 궁금했다. 세상의 목적은 무엇이며 우리 한순간의 목숨이 어떻게 하여 세상의 목적을 이룰 수 있을까?




아, 내 마음을 흔든 그대, 조르바여!

당신에게 영광이 있을진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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