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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에 물들다/내맘대로 책 읽기

[160614]김연수-다만 한 사람을 기억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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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 81호 (2014년 겨울) 中 수록작


중심스토리

  - 인디 밴드 가수인 희진은 일본의 K-Culture 진흥회로부터 초대받고 공연을 하게 된다. 그리고 유명하지 않은 인디 가수인 그녀를 초대한 일본의 의원과 만나게 되면서, 그녀가 10여년 전 '나'와 함께 일본을 여행하던 일을 떠올리며 '나'에게 편지를 쓰게 되는데....



#사실, 이 소설은 무얼 말하고자 하는지 정확히 파악하지는 못했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와 날짜를 같이 하는 걸 보면, 그 날 안타깝게 희생된 단원고 학생들 한 명, 한 명을 기억하는 사람들로 인해 그들의 삶이 의미로울 수 있다? 라는 말을 하고자 하는 것인가?...



기억할만한 문장

  하이랜드에서 후쿠다 씨가 십 년 만에 내게 돌려준, 카페 방명록에서 찢어낸 종이에는 내가 쓴 <하얀 무덤>의 가사가 일본어로 적혀 있었어. 그 가사 아래는 'H.J.'라는 이니셜이 있었는데, 아마도 거기까지가 내가 쓴 부분일 테고. 그 오른쪽 아래로는 비스듬하게 누군가, 아마도 남자가 한글로 이렇게 적어놓았더라구. "우리에게는 아직도 지켜볼 꽃잎이 많이 남아 있다. 나는 그 꽃잎 하나하나를 벌써부터 기억하고 있다는 걸 네게 말하고 싶었떤 것일 뿐." 그리고 그 아래에는 무슨 일인지 '2014년 4월 16일'이라는 날짜가 적혀 있었지.


<중략>


  "날개를 주세요"라고 말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유복하게 살기도 하고, 고향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을 떠올리며 자살하려고 하기도 하면서도 살아남으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어느 시점부터인가 줄곧 나를, 한 번도 만나본 일도 없고 얼굴도 모르는 나를 기억하게 된 일에 대해서 생각했어. 나는 그런 사람이 이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는 동안에도 말이야. 그렇다면, 그 기억은 나에게, 내 인생에, 내가 사는 이 세상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끼칠 수 있을까? 우리가 누군가를 기억하려고 애쓸 때, 이 우주는 조금이라도 바뀔 수 있을까?


<중략>


  거기에는 그저 어둠뿐이었어. 세상 누구도 기억하지 않을, 그저 캄캄한 밤바다. 그런데 가만히 바라보노라니까 그 어둠 속에도 수평선이 있어서 어둠과 어둠이 그 수평선을 가운데 두고 서로 뒤섞이는 거였어. 제주 가는 길에 대한 기억이라면 그것뿐이야. 캄캄한 밤바다, 경계를 무너뜨리며 서로 뒤섞이는 두 개의 어둠. 그건 어쩐지 그해에 가와무라 미술관에서 우리가 함께 본 마크 로스코의 벽화 연작들을 떠올리게 하더라구. 그래서 흥얼흥얼 노래를 불러보았지. 멀미에 시달리면서. 그 밤, 바다에서 나는 마크 로스코의 빛을 보았네, 라고 한번 불러보고. 괴롭고 힘들어서 좀 쉬었다가 다시, 내가 눈을 떼면 그대로 사라져버리는 빛을 보았네, 라고 불러보고. 음을 바꿔보기도 하고, 손으로 박자를 두들겨보기도 하고. 그대로 두 팔에 얼굴을 파묻고 엎드려 제발 멀미가 사라졌으면 하고 바랐다가, 다시 몸을 일으키고 앉아서 뒷부분을 불러봤지. 한 사람을 기억하네, 다만 한 사람을 기억하네, 라고. 그러고 나니 그 부분이 마음에 들더라. 그래서 그 밤을 보낼 수 있었던 거야. 자는 듯 마는 듯, 웃는 듯 우는 듯, 한 사람을 기억하네, 다만 한 사람을 기억하네, 라고 흥얼거릴 수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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