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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에 물들다/내맘대로 책 읽기

앵무새를 죽이지 않는 날은 올 것인가? 편견과 맞선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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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퍼 리(Harper Lee)가 만든 거대한 세계


  「앵무새 죽이기(To kill a mocking-bird)」는 책과 문학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누구나 한 번 쯤은 들어봤음직한 책이다. 이 위대한 소설은 1960년 출간되자마자 미국 전역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으며 1년 후인 1961년 무명의 작가에게 퓰리처 상을 안겨주었다. 또한 1962년에는 그 해의 최고 베스트셀러 상을 받았고, 하퍼 리는 평생동안 이 작품 하나만 쓰고 은둔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 이유로는 첫 작품이 너무나 큰 사랑을 받았고, 그 후에 쓴 작품들이 도저히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녀는 2015년 파수꾼이라는 두 번째 장편소설을 출간했고, 2016년 2월 작고했다.)


  이야기는 미국 대륙의 남부 앨라배마에서 시작한다. 화자인 스카웃(진 루이즈 핀치)가 오빠인 젬(제레미 핀치)의 팔이 부러진 과거 일을 회상하는 구조다. 550쪽에 달하는 이 장편소설의 핵심 플롯은 얼핏 보면 굉장히 단순하다. 한 마디로 말해, 억울하게 강간죄를 뒤집어 쓴 '톰 로빈슨'을 변호하는 '에티커스 핀치'의 이야기다. 하퍼 리는 간단한 플롯 속에 아무 많은 것들을 녹여냈다.


  무엇보다 그녀가 만든 세계를 보자. 주인공인 '핀치' 집안, 괴상한 소문을 품은채 두문불출하는 '레들리' 집안, 개학 첫날만 학교에 나오고 쓰레기를 뒤지며 사는 '이웰' 집안, 갚지 못할 것은 빌리지 않는다는 '커닝햄' 집안,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수많은 아줌마들. 자신의 정원을 망친 대가로 자신에게 책을 읽어달라고 하는 듀보스 할머니와 잼과의 에피소드 등. 하퍼 리는 정말로 이 마을이 있었던 것처럼 자세하고 세세하게 시대를 그려낸다. 꼼꼼하고 따뜻한 관찰이 아니었다면 도저히 불가능했을 것이다.



<To kill a mocking-bird : 앵무새 죽이기>

하퍼 리 지음, 김욱동 옮김



앵무새 죽이기?


  이 책의 제목인 앵무새 죽이기는 무엇을 뜻할까? 앵무새와 관련된 이야기는 2번 등장한다.


  어느 날 아빠가 오빠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난 네가 뒤뜰에 나가 깡통이나 쏘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새들도 쏘게 될 거야. 맞출 수만 있다면 어치새를 모두 쏘아도 된다. 하지만 앵무새를 죽이는 건 죄가 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어떤 것을 하면 죄가 된다면 아빠가 말씀하시는 걸 들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래서 모디 아줌마에게 물어보았다.

  "너희 아빠 말씀이 옳아."

  아줌마가 말씀하셨다.

  "앵무새들은 인간을 위해 노래를 불러줄 뿐이지. 사람들의 채소 밭에서 무엇을 따먹지도 않고, 옥수수 창고에 둥지를 틀지도 않고, 우리를 위해 마음을 열어놓고 노래를 부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는 게 없지. 그래서 앵무새를 죽이는 건 죄가 되는 거야."

P172~173

  "스카웃, 이웰 씨는 자기 칼에 넘어졌어. 이해할 수 있겠니?"

  아빠가 말씀하셨다.

  아빠는 기운을 낼 필요가 있어 보였다. 그래서 나는 아빠에게 달려가 껴안고 있는 힘을 다해 키스를 해드렸다.

  "네, 아빠. 전 이해할 수 있어요. 테이트 아저씨 말씀이 옳아요."

  내가 안심시켜드렸다.

  아빠는 팔을 푸시고는 나를 쳐다보셨다.

  "이해하고 있다니 무슨 뜻이지?"

  "글쎄, 말하자면 앵무새를 쏘아 죽이는 것과 같은 것이죠. 아니에요?"

P519~520


  이와 같은 맥락을 살펴볼 때, 그리고 이야기의 핵심 사건인 '톰 로빈슨' 변호와 연관지어 생각해봤을 때, 앵무새 죽이기는 실제로는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는 사람들과 동물들을 괴롭히는 것, 편견을 가지고 대하는 것을 의미한다. 마을 사람들은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톰 로빈슨'이 죄가 있을 것이라고 단정짓는다. 젬과 스카웃은 '부 레들리'가 집안에 갖혀산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무서워하고 죄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모두 '그럴 것이다.'라는 개인 또는 집단의 편견과 차별에 불과한 것이다.


  우리 사회를 둘러보더라도 실제로 죽어가는 앵무새들이 얼마나 많은가. 성별로 인한 차별, 재산으로 인한 차별, 출신 국가로 인한 차별, 지능에 의한 차별, 외모로 인한 차별. 궃이 여기서 꼽지 않더라도 조금만 생각해보면 손가락 10개를 채우고도 남을 것이다. 이 소설의 배경인 1930년에서 벌써 86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우리는 또 다른 앵무새들을 죽이고 있는 것이다. 과연 앵무새를 죽이지 않는 날은 올 수 있을까?



내 생각엔 말이야...

 

   아빠가 정말 옳았다. 언젠가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보지 않고서는 그 사람을 참말로 이해할 수 없다고 하신 적이 있다.


(중략)


  아빠의 두 손이 이불을 잡아당겨 나에게 덮어주시느라고 내 턱 밑에 있었다.

  "스카웃, 우리가 궁극적으로 잘만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 멋지단다."

P528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이 당연하던 1930년대. 하퍼 리는 그 시대에서 대부분의 사람은 다 멋지다는 믿음을 설파한다. 이렇게 멋진 글을 만들었으니 아무리 후속작을 잘 쓰더라도 마음에 안 들어서 완성을 하지 못할 수 밖에. 하퍼 리의 소설을 읽으면서 언젠가 우리들도 각자가 가진 개별적인 특성이 아니라, 전체로서의 인간으로 대우받고 소통하고 교감할 수 있는 그런 날이 오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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