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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물들다/시끄러운 이야기

당당위 시위 실패로 본 인터넷 여론의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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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밝히고 시작하자. 나는 남자다. 내가 왜 이런 말을 먼저 꺼내고 시작하냐면 요즘 우리 사회의 큰 이슈 중 하나인 젠더 문제에 대해 쓰기 위해서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남자 또는 여자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젠더 이슈에 있어서는 누구나가 적어도 한 쪽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거나 소극적으로 동조하게 된다.


그렇다면 나는 어떠한가? 요즘 페미니즘이 사회적으로 대두되고 있고, 여성들이 억압과 차별을 받아왔다는 그녀들의 의견에 나는 어느 정도 동의한다. 하지만 남자인 내가 그녀들이 직접 몸으로 느끼는 어려움을 어찌 고스란히 알 수 있겠는가? 그들이 내는 목소리에 어느 정도 동의를 하면서도, 그녀들이 간혹 이해하기 어려운 요구나 인터뷰를 할 때 고개를 갸웃거린 것도 사실이다. 어쨌든 그녀들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혜화역에 모였다. 1차로 시작된 시위가 점점 세가 불어 4차 5차까지 진행된 걸로 안다. (지금 네이버에 쳐보니 대충 1만명 정도된다던가.) 하여간 그럼에도 사실 나는 그녀들에 대해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그러던 와중에 곰탕집 사건이 터졌다. 명백한 증거가 없음에도 피해자 여성의 일관된 주장으로 인해 실형 6개월 판결이 내려졌다. 아내가 판결문을 대형 커뮤니티에 올렸고 사람들은 분노했다. 그 뒤를 이어 비슷하게 무고로 고통 받는 (받아온) 사람들의 인증글이 올라왔다. 네티즌들의 분노가 극에 달했다. 분노의 대상은 다양했다. 유죄추정의 판결을 내린 사법부를 향한 것부터, 이해할 수 없는 기소를 한 검사, 알게 모르게 사회 곳곳에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여성단체, 불순한 의도로 남자에게 접근하는 일부 꽃뱀 여성들. 등등 다양한 방향으로 분노가 쏟아졌다.


나도 남자라는 조건 때문인지, 혜화역에 모인 그녀들보다는 곰탕집 사건에 더 관심이 갔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납득할 수 없는 사건이라고 판단했다. 그 결과로 국민청원이 20만명을 넘었다. 그리고 남성들도 목소리를 내자는 시위가 잡혔다. 이름은 당당위이고 날짜는 10월 27일로 결정되었다. 적어도 내가 보기엔 인터넷 여론은 들끓었다. 수많은 남성들이 지지를 보냈고, 비슷한 사례로 억울함을 호소하는 글들이 틈틈이 계속됐다. 나는 그 과정을 흥미롭게 지켜봤다. 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나를 대신해 조금 더 큰 목소리를 내주길 바랐다.


그리고 오늘, 당당위의 시위에 60~100명이 참여했다는 기사가 떴다.





실망스러웠다. 커뮤니티에 접속해 관련 글을 검색해보았더니 시위 실패 원인을 분석하는 다양한 글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남자들은 일을 하느라 시간이 없다느니, 날씨가 추워서 그랬다느니, 누군가가 분탕질을 쳤느니, 시위의 목표가 애매했다느니, 날짜가 너무 뒤였다느니, 심지어 누군가는 오늘이 월드시리즈 하는 날이라 그런 것이라는 분석까지 적어놓았다. 이런 다양한 분석들 가운데 어떤 것은 사실일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위에 열거된 것들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만약 주최측이 예상한대로 1만 5천명이 모일 것이라고 예상한 시위에 5000명이나 6000명이 모였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모이지 못한 이유로 위의 요인들을 분석해보는 것이 의미있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 1만 5천명을 예상했지만 실제는 60~100명이 모였다. 이것은 위에 말한 것과 같은 자잘한 원인에 의한 것이 아니다.



냉정하게 생각해야 한다. 다른 요인들은 생각해볼 필요도 없다. 이번 당당위의 시위는 실패했다. 그리고 그 원인은 사람들의 마음 깊숙한(뼈저린) 공감대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라고 밖에 할 수 없다. 저정도 소수의 사람들만이 모였다는 것은 변명할 것도 없이 이렇게 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다른 요인들은 부수적인 것일 뿐이다.


(사족을 덧붙이자면 오늘 광주에서 진행된 임창용 방출 반대 및 김기태 퇴진 시위 인원이 당당위 시위 인원보다 훨씬 많은 것이 팩트이다.)




나는 이번 사건을 보면서 인터넷 여론의 한계를 다시 한 번 느꼈다. 나도 스마트폰 세대라서 하루 중 많은 시간을 스마트폰과 함께 한다. 내 생각과 비슷한 커뮤니티들을 여러 곳 들락거리고 그곳에 올라온 이슈들에 공감하기도, 분노하기도 하며 지낸다. 곰탕집 사건에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분노했다고 거리로 몰릴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말그대로 우물 안 개구리였을 분이다.


이번 시위의 실패를 바라보면서 반대급부로 나는 혜화역에 모였던 만 여명이 넘는 그녀들의 절실함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물론 남자와 여자가 처해있는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단순 비교가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혜화역에 모였던 남자와 여자의 수 차이는 상황의 차이를 넘어설만큼 압도적이다. 여성들은 직접 거리로 뛰어나올만큼 절실했고, 남자들은 거리로 뛰어나올만큼 절실하지 않았다. 이것이 내가 지금껏 젠더 이슈를 지켜보며 내린 결론이다.


그리고 인터넷 여론의 한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인터넷이란 구조의 특성상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 인터넷을 떠도는 수많은 정보 가운데 내가 관심있는 것만을 클릭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슷한 정보를 많이 받아들이다보면 그것이 정말 사실이고 중요한 것처럼 느껴지게 된다. 나 또한 그랬다. 하지만 현실은 어떠한가. 이번 사건을 보면서 인터넷 여론과 실제 민심은 이렇게도 차이가 많다는 걸 또다시 한 번 느낀다. 언제쯤 균형잡힌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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