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강렬한 이미지의 세상
오늘날 우리는 이미지의 세상에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도 보통을 훨씬 상회하는 수준의 아주 강렬한 이미지의 세상. 그리고 그 세상을 구성하고 있는 주춧돌은 TV이다. 쉴새없이 화면이 바뀌며 현란한 영상을 뿜어대고 적재적소에 터지는 음향과 함께라면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한번 TV에 빠지면 자리에서 일어날만한 특별한 이유나 의지 없이는 하루 종일 TV만 보고 있기도 일쑤이다. 뭐 그런데, TV뿐만이 아니라 모든 일에는 장점과 단점이 함께 하는 것일테지만 여기에선 단점에 대해서 생각해보고자 한다. 그것도 TV가 만들어내는 이미지에 대해서.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TV라는 매체를 통해 대중들에게 비춰지는 사람들에 대한 거짓이미지에 대해서.
2. 예능이라는 이름의 가면
나는 다양한 TV 프로그램 중에서도 예능 프로그램을 좋아하는 편이다. 아니, 좋아하는 편이었다. 최근에는 예능을 보느라 많은 시간을 쓰지는 않게 됐으니. 어쨌든 예능 프로그램의 목적은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주는 것이다. 각박하고 건조한 세상에 웃을 일을 준다니 그것만으로도 나름의 의미가 있는 일은 분명하다. 실제로 훈훈한 사례들을 찾아보면, 불치병에 걸리거나 의식이 없는 환자들이 평소에 좋아하던 예능 프로그램의 소리를 듣고, 혹은 그곳에 출연한 사람들의 도움으로 놀랄만한 회복을 보였다는 사례들도 종종 들려온다. 물론 좋은 일이다.
그런데 나를 포함한 대분의 시청자들은 TV 프로그램이 수많은 사람들의 협업으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머리로는 알지만) 꽤 깊게 이해하고 있진 못하다. 그러니까 좀 더 쉽게 하자면, 예능 프로그램에서 비춰지는 어떤 사람들의 이미지가 수많은 사람들(보조연기자, 작가, 감독, 사전 준비 등)에 의해 가다듬고 정리되어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쉽게 의식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예능에 등장한 사람의 이미지가 실제 그 사람이라고 쉽게 믿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가 예능에 나와 어리숙한 모습을 보이면 실제의 모습도 어리숙할 것이라고 믿고, 철저하리만큼 계산적인 모습으로 웃음을 주면 실제로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게 정말 사실일까?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내가 굳이 사례를 들어가며 시끄럽게 떠들 필요도 없이 그것이 진짜가 아니라는 사실은 쉽게 알 수 있다. 번뜩이던 재치로 시사논평을 하며 인지도를 모은 어떤 이는 불륜을 저지르고, 부당한 사회 제도 개선을 부르짖던 자는 자신이 그 제도의 수혜자임이 드러났다. 실실거리며 웃는 얼굴을 보이던 사람은 몇십억에 가까운 탈세를 저질렀고, 성실한 이미지의 어떤 이는 편법으로 수많은 이익을 취함이 드러나기도 한다. 나는 그런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쯧쯧거리며 그럴줄 알았어.라는 말을 반복하지만 또 시간이 얼마 지나고 나면 또 다른 이미지의 가면에 빠져들고 만다. 끝없는 반복이다.
3. 속지 말자. 직접 경험하기 전까진.
이젠 더 이상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 글을 쓴다. 이젠 더 이상 TV에 비친 그 사람의 이미지만으로 그 사람을 잘 아는 것처럼 느끼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을 것이다. 속지 말자. 아니, 애초에 그들은 속이려는 생각도 없었을 것이다. 그들에게 속아넘어간 것은 나 스스로일지도 모른다. 내가 직접 경험하기 전까진 그들을 안다고 섣부르게, 생각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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