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 이웃나라 일본의 대표적인 작가 중 한 명이다. 하루키의 소설을 읽어보진 않았더라도 그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전세계적으로 너무나 유명한 '상실의 시대'(원제:노르웨이의 숲)와 최근 엄청난 열풍을 불러온 '1Q84'까지. 이미 하루키는 우리 나라 사람들에게 너무도 친숙한 작가가 되어버렸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나는 하루키의 소설을 읽는 것을 좋아한다. 그의 모든 작품을 찾아가며 읽진 않는다. 하지만 어디선가 그의 이름이 적힌 책들을 발견하게 되면 나는 일단 멈춰선다. 그리고 그 책을 앞뒤로 훑어보다가 대여를 하든, 구매를 하든, 결국은 읽게 되는 것이다. 나에게 있어서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고유명사는 그런 의미이다. 의심치 않고 믿고 읽을 수 있는 그런 의미.
누군가의 글을 좋아하는 것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을 수 있겠다. 재미가 있다던지, 혹은 문장이 좋다던지, 혹은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농염한 매력이 있다던지. 그런데 내가 하루키를 좋아하는 이유는 이런 것들보다 바로 그가 그려내는 세계와 인물들이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하루키가 만들어내는 공간에는 항상 잔잔한 재즈 음악이 흐른다. 나는 재즈 음악을 하나도 모르지만 그의 세계에 흐르는 그 음악들의 느낌을 왠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가 그려내는 등장인물들은 왠지 재즈 음악을 닮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격렬하지 않으면서도 소심하지 않다. 조용히 잔잔하지만 묵묵하고 소신있는 등장인물. 하루키가 만들어내는 이런 등장인물들은 그가 작품의 배경음악으로 깔아놓은 잔잔한 재즈음악과 너무도 닮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찌됐건, 이번에 하루키는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이라는 작품으로 또 만나게 됐다. '상실의 시대'에서 하루키는 원래 잘 쓰지 않는다던 작가의 말에 이렇게 썼다. "이 소설은 100% 연애소설입니다." 하지만 평론가들은 그 안에서 무언가 인위적인 의미를 찾아냈고 결국 "노르웨이의 숲"이라는 원작의 제목을 "상실의 시대"로 바꿔버리고 만다. 평론가들이 뭐라고 했건간에 나는 그 책을 읽으면서 정말 100% 연애소설이라는 생각으로 읽었다. 주인공 와타나베와 나오코, 미도리와의 오묘한 관계는 내 이야기가 아닐까싶을 정도로 비슷한 구석이 있었고, 우리나라에선 있을 수 없는 사건들처럼 전혀 맞지 않는 구석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글을 보면서 정말 순수하게 책을 읽고 있다는 행위의 즐거움을 맛볼 수 있었다.
이번 작품 또한 마찬가지이다. 전체적으로 볼 때 상실의 시대와 비슷한 구조로 이루어진 이 책은 주인공이 과거의 첫사랑과의 이별 한 후에, 몇 십년이 지나고 다시 그 첫사랑을 만나기까지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딸린 유부남으로서 첫사랑의 여인에게 끌리는 마음을 하루키는 정말 공평하고도 중립적으로 그리고 있다. 나는 이래서 하루키를 좋아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어떠한 생각을 하루키는 도덕적인 관념의 틀을 던져버리고 현상 그대로 써내려갈 줄 아는 훌륭한 작가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은지 오래돼서 정확한 감상평이 생각나지 않는다.ㅠㅠ 앞으로 감상문을 바로바로 쓰자. 오늘 이 글도 용미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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