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의 두번째 산문집.
김연수라는 작가를 처음 만났던 순간이 생각난다. 그를 처음으로 만난 것은 군복무 시절이었다. 그 시절은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에게나 많은 변화를 주는 시절인데, 나 또한 22개월 동안 많은 변화를 겪었다. 물론 그 변화에는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겠지만, 가장 긍정적인 변화는 '책을 읽을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이다. 그 동안 입시네, 대학생활이네 하며 멀리했던 책을 다시 접할 수 있도록 사사건건 나를 갈궈준 선임들에게 새삼 고마움을 느낀다. 말을 많이 하면 갈굼을 받는 공간에서 나는 책 속으로 도피했다. 그리고 그 곳에는 김연수라는 작가가 있었다. 2009년 이상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가지 즐거움'은 당시에 나에게 있어서 '아, 이런 것이 바로 문학이구나!'라는 잊혀지지 않는 어마어마한 충격을 주었다, 는 거짓말이고 나는 그 단편소설이 무슨 말을 하는지조차 종잡을 수 없었다.
문제는 김연수 작가가 선정한 자선대표작. 그 이름도 유명한 '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을 읽고 나는 이 작가에게 빠져버렸다. 그 당시 나는 한가지 결심을 했는데, 그것은 바로 삽질과 노동으로 이루어진 하루가 너무 무의미하니 적어도 잠들기전까지 하루에 단편 하나씩은 읽자는 원대한 계획이었다. '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이라는 단편소설은 내가 그 계획을 하고나서 처음 접한 소설이었다. 그러고보면 모든 일은 정말 의지의 차이일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가벼운 의지로 시작된 1일 1단편소설 읽기는 모래성과도 같은 나의 박약한 의지 덕분에 얼마 못가 흐지부지 해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취침소등이 이뤄진 후에 침낭 속에서 LED불빛에 의지해 한장 한장 읽어가던 그 당시의 느낌은 너무도 생생하다. 나는 그 소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3번 정도를 읽고 나서야 기본적인 서사가 이해될 정도로 책읽기에 잼병이었지만 오히려 그렇게 반복해서 읽었던 경험이 김연수 작가의 문장과 그가 말하는 방식에 대해서 푹 빠지게 되었다고도 할 수 있으리라.
김연수 작가에게 더 매료된 것은 그의 소설이 아니었다. 산문집 '청춘의 문장들', 에세이 '여행할 권리'가 그것이었다. 특히나 청춘의 문장들을 읽으며 나는 가벼우면서도 무거운 그의 문장들. 그가 살면서 겪었던 일들을 담담하게 말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그의 소탈한 철학들을 보며 그에게 인간적으로 매료되었던 것 같다. 소설가 김연수씨에게는 미안하지만 김연수라는 작가는 나에게 있어 소설가보다 작가로서 더 의미가 있었던 셈이다.
그런 그가 두번째 산문집을 낸다고 해서 무려 '예약구입'까지 해서 신간을 받아보았다. 심플한 디자인에 무거운 코끼리가 운동화를 신고 달리고 있는 그림으로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이 책은 달리기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쓰여있다.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인디 '청춘의 문장들'보다는 재미가 덜 했지만 역시나 김연수라는 생각을 했다.
하루키처럼 늙어서도 농담을 잘하고 싶은 작가가 되고 싶다는 그답게, 위트 있고 경쾌하면서도 진지한 그의 문장을 읽고보니 문득 나도 그처럼 달리기가 하고 싶어진다. 달리기의 본질은 지금의 행복, 기쁨, 절망, 고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신에게 집중하며 주어진 '지금'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김연수, 그리고 달리기뿐만 아니라 '삶'이라는 것도 그와 마찬가지라고 말하는 그의 글을 읽으면 하루하루 헛되이 사는 나 자신을 반성해보게 된다. 5키로를 27분에 주파하고, 하루에 15매의 글을 쓰며, 그 이상 달리지도 쓰지도 않는다는 그에게서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의 좋은 향기가 난다.
이제 나에게 있어서 문제는 머리로 알고 있는 것을, 몸으로도 알 수 있느냐라는 아주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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