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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에 물들다/내맘대로 책 읽기

[120812]강상중-고민하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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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책을 좋은 책과 나쁜 책으로 나누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책이라는 것은 그 안에 담긴 자체적인 텍스트의 질도 중요하지만, 독자가 그 책을 읽고 있는 시점에서 갖고 있는 생각이나 처해있는 환경과 긍정적인 상호작용이 이루어져야만 그 책이 독자에게 좋은 책으로 다가올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전에 읽었을 때는 별다른 감동을 못 느꼈던 책을 나중에 다시 읽어보았을 때 이전과 다른 큰 감동을 느끼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강상중의 '고민하는 힘'이라는 이 책은 나에게 그다지 좋은 책이 되지 못했다. 안철수가 의사와 백신엔지니어를 병행할 때 읽으면서 많은 도움을 주었던 것으로 유명한 이 책은 적어도 지금의 나에게 있어서는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했다. 생각해보자. 며칠밤을 세워 야근을 하면서 피곤에 찌들어있는 사람에게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것은 큰 힘이 될 터이지만, 하루하루가 권태로 가득찬 사람에게 또 다른 쉼터를 제공하는 것은 그리 큰 의미를 가지지 못할 것이다.

 

  내가 이 책에 그다지 감흥을 느끼지 못한 것은, 아직까지는 내가 살아가면서 고민이라는 것, 더군다나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들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을 해본 경험이 없거나, 그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책에 나와있는대로 자신의 청춘에 이런 의문들에 사로잡혔고 그 의문의 탈출구로 소셰키와 베버의 도움을 받아 험란한 고민의 숲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물론 소셰키와 베버 또한 그 당시에 비슷한 문제로 철저히 고민을 했을 인물임이 틀림없다.

 

  비록 나에게는 큰 의미가 되지 못했지만 저자가 제시하면 문제들은 인간이라면 살아가면서 누구나 한번쯤은 생각해볼만한 문제들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1. 나는 누구인가?

 2. 돈이 세계의 전부인가?

 3. 제대로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

 4. 청춘은 아름다운가?

 5. 믿는 사람은 구원받을 수 있을까?

 6. 무엇을 위해 일을 하는가?

 7. 변하지 않는 사랑이 있을까?

 8. 왜 죽어서는 안되는 것일까?

 9. 늙어서 '최강'이 되라.

 

  로 이어지는 9가지 물음에 대한 저자 나름대로의 해석들을 그래도 나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아직까지 위의 9가지 질문들에 대한 심각한 고민을 해본적은 없지만 언젠가 그 날이 올때 이 책의 저자가 했던 말들이 나에게 많은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구절

 

  1.

  '무엇을 하든, 무엇을 믿는 자유'라는 말은 사실 괴로운 말입니다. 넓은 들판에 혼자 남겨지면 사람은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게 됩니다. 미아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덮쳐오겠지요. '무엇을 하든, 무엇을 믿든 자유'라는 말은 그런 상황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에리히 프롬은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1920년대 이후 독일이 개인주의로부터 급속도로 극단적 파시즘(전체주의)으로 이행한 것을 '자유'라는 관념으로 셜명합니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자유를 동경한다고 생각하지만 의외로 그렇지 않습니다. 자유로부터 도망쳐 '절대적인 것'에 속하고 싶어하기도 합니다. (5. 믿는 사람은 구원받을 수 있을까?)

 

→ 근대가 시작되면서 사람들은 중세에는 당연히 믿어야만 했던 '종교'에도 자유를 부여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동안 종교가 내려주었던 해답들을 자신만의 그것을 구해야하는 과정이 필수불가결하게 발생하였으며 사람들은 그 과정에서 들판에서 미아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2.

  결국 사랑은 어떤 개인과 어떤 개인 사이에 전개되는 '끊임 없는 행위의 결과'이기 때문에 한쪽이 행동을 취하고 상대가 거기에 응하려고 할 때 그 순간마다 사랑이 성립되는 것이며, 그런 의지가 있는 한 사랑은 계속될 것입니다.

  만약 부부라면 오랫동안 함께 지내는 과정에서 아이가 태어나기도 합니다. 점점 권태감을 느끼기도 하겠지요. 사람에 따라서는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에 나오는 것처럼 삼각관계에 빠지기도 하겠지요. 사랑은 계속 모습이 변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매 순간 둘 사이에 물음이 있고 서로 그 물음에 대해 반응할 의지가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사람이 사랑하는 방법이라는 법칙은 없습니다. 체스를 두는 것처럼 사전에 정해진 규칙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수를 두는 것이지요. 그와 마찬가지로 상대가 던지는 물음 하나하나에 대응하다가 마지막에 상대가 던지는 물음에 대응할 의지가 사라지게 되면 사랑은 끝이 납니다.

  계속해서 상대에 대한 열렬한 애정을 갖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많은 살마들은 애정의 온도가 떨어졌을 때 쓸쓸함을 느낍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랑의 모습이 바뀐 것일뿐이지 사랑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중략)

  돌이켜 생각해보면 사랑은 그때그때 상대의 물음에 응답하려는 의지입니다. 사랑의 모습은 변합니다. 행복해지는 것이 사랑의 목적이 아닙니다. 사랑이 식을 것을 처음부터 겁낼 필요는 없습니다. (7. 변하지 않는 사랑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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