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예술에 물들다/막눈이 영화광

[120304]퍼펙트게임(Perfect Game, 2011)

반응형


  조승우, 양동근 주연의 퍼펙트게임. 야구에 관심이 많은 나로서는 정말이지 보고 싶었던 영화였다. 사정상 극장에 개봉했을 당시에는 보지 못하고 얼마전에야 비로소 컴퓨터로 보게 되었다.


  올해로 30년을 맞는 프로야구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두 명의 국보급 투수. 바로 최동원과 선동렬. 그리고 그들이 맞붙었던 3번의 경기. 그리고 1승 1무 1패의 기록. 연장 15회까지 선발투수가 200개가 넘는 공을 뿌려가면서 최종스코어 2:2로 비길 수 있는 경기를 했다는 것이 요즘 야구에서도 상상이 잘 안될 지경이니 그 당시에는 얼마나 이슈가 되었겠는가.


  영화를 보기전까지 나는 최동원과 선동렬이 15회까지 역투하는 경기장의 모습이 이 영화의 메인장면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영화를 다 보고나니 이런 생각이 든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최동원'만을 위한 영화이다. 그와 함께 15이닝의 혈투를 벌였던 '선동렬'도 사실상 존재감이 거의 없다. 이 영화는 경기 전날 날이 새도록 술을 퍼먹어도 압도적인 경기력을 보여주는 "타고난 천재 선동렬"이 조연으로 등장하는, 철저한 자기관리와 일구일생 일구일사를 좌우명으로 삼는 "노력하는 천재 최동원"의 이야기다. 


  이 영화의 장르는 스포츠라기보다는 드라마에 가깝다. 역동적으로 공을 뿌리고 상대방과의 치열한 수싸움과 각종 전략전술에 관한 내용이 영화 속에는 없다. 영화는 라이벌 후배에게 지고 싶지 않은 선배 '최동원'의 이야기만을 그리고 있다. 그 과정이 자뭇 통속적일 뿐더러, 3번째 경기에서 2점을 내는 장면을 만들어야했기에 각팀에 등장하는 2명의 타자 조연들의 이야기를 늘어놓는 장면도 너무 뻔해보였다. 또한 15이닝이 끝나고 자신도 모르게 마운드로 걸어나가는 최동원과 그를 향해 아낌없는 박수를 쳐주는 동료들의 모습은 정말 감동의 쓰나미... 라기보다는 유치한 연극과도 같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영화를 상당히 재밌게 봤다. 내가 꼽은 이 영화의 베스트 장면은 고등학교 감독님의 장례식에 간 조승우가 쭈뼛거리며 돈을 안 가져왔다고 말하며 전화번호를 적어줄테니 제일 큰 곳으로 옮겨달라고 한 장면과 곧바로 이어지는 계단에 앉아서 훌쩍이는 장면이다. 당시 야구판을 주름잡는 슈퍼스타 최동원의 인간적인 면모가 가장 강하게 느껴졌던 장면이다. 그는 그 장면 속에서 너무도 평범한 한 명의 인간으로 그려지고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이야기를 품고 산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재벌인 빌게이츠나 서울역에서 노숙하는 노숙자나 모두 돈 걱정은 있을 것이며, TV에서 화려한 모습만을 비치는 연예인들에게도 분명히 그들만의 고민과 걱정이 있을 것이다. 당시 야구판을 주름잡고 상대 타자를 공으로 찍어누르던 대투수 최동원에게도 그처럼 인간적인 면모가 있었을 것이다. 나는 계단에 앉아서 훌쩍이는 그의 모습에서 그 또한 우리와 다르지 않은 평범한 인간일 뿐이라는 사실을 절절하게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야구를 너무도 좋아한다. 그래서 이 영화에 대한 평가를 하는데에는 그 선호도가 작용했다. 영화는 통속적이고 조금은 뻔했지만 그럭저럭 괜찮은 점수를 줬다. 하지만 야구가 아닌 다른 종목으로 비슷한 이야기가 만들어졌다면 어떤 느낌이었을까를 생각해보면 재밌게 봤다고 말할 수가 없을 것 같다. 앞으로는 야구에 대한 내 선호도가 작용하지 않고도 좋은 영화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그런 멋진 "스포츠 영화"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