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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에 물들다/내맘대로 책 읽기

[120902]칼레드 호세니이-연을 쫓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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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레드 호세니이의 장편소설. 연을 쫓는 아이.


  네이버에 검색해보니 전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이며 영화화까지 된 대단한 작품이다. 그런데 나는 이 작품을 읽는 동안 머릿속에 계속 물음표(?)가 떠올랐다.


  오랜 시간동안 전쟁으로 고생하는 아프가니스탄, 그곳을 침공한 소련과 미국, 그리고 냉전이 끝나고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 탈레반 정권까지 드러난 역사적인 내용또한 그럴싸하다. 바바, 나힘칸(맞나?), 아미르, 하산, 알리, 아셰프를 비롯해 다양하게 등장하는 인물들, 그리고 반전이라고 할 수 있는 아미르와 하산의 이복형제 관계, 소랍을 학대하는 아셰프가 드러나는 장면을 보면 독자가 놀랄 수 있을만한 요소가 충분하다. 그런데 나는 왜 이 소설에 그렇게 집중하지 못했을까? 몰입이 되지 않았을까?


  책을 덮고 잠시 생각하니 그 원인으로 2가지 정도가 떠오른다.



  일단 첫째는 등장인물의 역동성이 부족해보인다. 이 책에는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적어도 독자의 이목을 확 잡아당길만한 매력적인 캐릭터가 없다. 다양한 인물들이 서로 은밀하고도 복잡한 관계로 이루어져있지만 사실 그것뿐이다. 매력적이지가 않다. 음... 매력적이지 않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냥 등장인물이 그 대상으로서 존재할뿐이지 살아있지 않다. 음.. 가장 최근에 읽은 '살만루슈디의 -한밤의 아이들-'과 비교하면 이해하기 쉬울지도 모르겠다. 루슈디의 소설에서 인물들은 활자속에서 통통거리며 뛰어다닌다. 둘의 차이를 찾아보자면 에피소드의 유무로 결정지을지도 모르겠다. 루슈디는 인물을 소개할 때 그에 관한 에피소드를 이용한다. 원장수녀님의 단식투쟁, 놋쇠잔나비의 구두에 불 붙이기, 후추통 기동사건 등등 에피소드가 중심이 된 일들을 읽다보면 우리는 그 인물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고, 하나하나의 인물이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다. 물론 작가의 입장에서도 그런 식으로 에피소드들을 통한 이야기를 전개한다면 훨씬 더 좋은 소설이 될 것이다. 물론 만들기가 어렵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연을 쫓는 아이'에는 그런 에피소드들이 별로 없다. 그냥 한길로만 쭉 직진하는 소설이다. (글을 쓰면서 생각하니 '한밤의아이들'은 과거형으로 쓴 소설이고, '연을 쫓는 아이'는 현재형으로 쓴 소설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별다른 에피소드들이 없이 일방적으로 나열되기만 하는 이야기의 흐름은 크게 매력적이지 못했다. 사실 아미르가 카불에 들어가서 소랍을 찾는 부분에서 더이상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맨 뒷장을 쳐서 줄거리가 적힌 부분을 보고 이 책을 읽는 것을 그만뒀는데, 사실상 아미르가 소랍을 찾건 말건 크게 상관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내가 아미르에게 감정이입을 하지 못했고, 그 원인으로는 작가가 캐릭터를 살아있게 만들지 못한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둘째는 위에서 살짝 적었지만 전혀 감정이입이 되지 않는 주인공에 있다고 본다. 이 소설은 화자가 아미르로 진행되는 1인칭 소설이다. 우리는 아미르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아미르가 되어 소설의 시간과 공간을 여행한다. 하지만 우리가 아미르가 되기에 아미르는 너무나 부족하다. 무엇이 부족할까? 바로 '감정'이라고 생각된다. 좋은 소설이라는 것은 우리가 주인공이 되어 그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것. 그것을 흔히 '감정이입'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 감정이입을 하려면 말그대로 '감정'이 느껴져야 한다. 내가 아미르가 되어 전쟁으로 고생하는 아프가니스탄과 살아남기위해 고생하는 미국, 그리고 이복형제 하산과의 갈등을 직접 느낄 수 있어야 그의 고통과 번뇌, 눈물의 의미가 절절하게 다가올 것인데, 그러기에는 아미르가 너무 평면적인 인물이다. 글을 읽으면서 그의 감정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글을 읽다보면 결국 이런식이 된다. 하산이 배다른 이복형제라는 대목에서 '맙소사!'라는 반응이 나와야하는데, '그렇군.'이라는 반응이 나오는 것이다. 이 차이는 무엇일까? 결국은 에피소드와 디테일, 감정표현의 부재라고 생각된다.


  모르겠다. 루슈디의 소설을 읽기 전에 이 소설을 먼저 읽었으면 어땠을까? 사실 루슈디의 소설을 읽으면서 재밌기도 했지만 그 많은 양을 소화하느라 많이 힘들었다. 하지만 다 읽고나서 인도와 파키스탄, 동파키스탄(방글라데시)에 관한 근사한 이야기를 들은 것 같아서 너무 재밌었다. 이 작품은 파키스탄 위쪽에 위치한 아프가니스탄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라고 해서 루슈디의 소설처럼 근사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지, 읽기전부터 많은 기대를 했다만 결과는 조금 실망이었다. 마치 너무 단 음식을 먹고 난 후에 다른 음식의 맛을 잘 느끼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이 소설이 좋은 소설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라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그렇게 다가오지 못한 것은 단지 책을 읽은 시기적인 불운에 불과한 것인지, 책이 가지고 있는 그 자체적인 부족함 때문인지는 조금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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