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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에 물들다/내맘대로 책 읽기

[120108]김영하 - 검은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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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진우는 아비와 어미보다는 훨씬 현실적이었다. 그리고 울증에서 벗어날 때면 조증이 찾아오곤 했는데, 지금이 바로 그때였다. 까짓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부모들이 뭘 저렇게 심각하게 생각할까 싶었다. 일을 하든 무엇을 하든 살아남아야 할 것이 아니냐.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 말고는 아무리 봐도 살 길이 없어 보였다. 게다가 아무것도 할 줄 모르고 달팽이처럼 집에만 처박혀 있는 아버지도 못마땅햇다. 이종도는 망해가는 제 나라를 꼭 닮았던 것이다. 일하기를 싫어하고 게으르고 무책임했다. 가족을 이 지경으로 몰아넣었으면 마땅히 그 책임을 져야 할 것이 아닌가.

-p.128

 


  (내가 알기로) 국내에서 잘 나가는 젊은 작가 중의 한 사람인 김영하. 그의 글을 접하는 것은 "검은 꽃"이 처음이다. 많은 사람들이 알다시피 이 책은 조선 말, 식민회사의 꾀임에 넘어가 멕시코에 노예로 팔려가는 천여명 중 주인공 몇 인의 이야기를 중심적으로 쓴 소설이다. 사람들의 좋다는 평가에 이끌려 읽게 되었는데 실망이 컸다.

 

  책을 읽다가 덮었다. 방 옆으로 던져놓았다가 다른 일에 열중한다. 잠시 쉬는 시간에 책을 다시 들어서 읽다가 얼마 못 가 또 덮는다. 이러기를 반복하다가 결국은 읽기를 포기했다. 절반 정도 밖에 읽지 않았지만 그 뒤로로 많은 사람들이 고생하는 이야기가 나올 것이라는 것은 뻔했고, 맨 뒤로 넘어가 결말만 간단하게 읽고 말았다.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보니 김영하에게 자기 작품 중 한 권만을 추천하라고 하면 이 책을 추천하겠다고 한다. 다른 사람들의 평가도 그 동안의 김영하 스타일과 다른 작품이라고 하는 것을 보니, (잘은 모르지만) 김영하에게 있어서 이 작품은 최고로 잘 만들어진 작품이라기보다는 많은 자료와 조사를 통해서 고생하며 만들었기에 애착이 가는 작품으로 꼽았을 것이라는 추측을 해본다. 하지만 나 같은 평범한 독자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그러한 사실 자료와 치밀한 조사보다도 재미가 우선이기에, 주구장창 고생만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끈기있게 쳐다보기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김영하의 "검은 꽃">

 

  멕시코에 도착 후 다른 농장으로 흩어져 각각 고생하는 농민들의 이야기를 긴장감 있게 잘 끌어나가다가 장이 바뀌면서 자료에 바탕을 둔 당시 조선시대의 이야기라던가, 왜 신부가 되고, 그 사람이 어떤 과거를 가지고 있는지 회상하는 장면은 너무 지루했고, 나는 그때마다 번번히 책을 덮고 말았다. 오히려 많은 자료들과 치밀한 조사들이 작품에 방해가 된 느낌이다. 그런 자료들은 이야기와 병렬적으로 새로운 장으로 구성하기 보다는 본래의 이야기속에 자연스럽게 녹여내어 표현했으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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