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우>라는 단편 속에는 인간에 대한 의심과 불안이 무겁지 않게 잘 드러나 있다. 소설은 3인칭 전지적 작가시점이고, 측량기사를 초점화자로 하여 이야기가 전개된다. 측량기사는 구획선 정리를 의뢰받고 어느 지역으로 향하는 중이다. 역에서 내려 그 지역까지 가기 위해 농부의 마차를 타게 되는데, 이 마차가 뭔가 심상찮다.
말은 왠지 힘이 없어보이고, 채찍을 네 번이나 맞아야 움직인다. 측량기사는 이때부터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낀다. 그는 혹시나 농부가 자신을 해치려는 것은 아닐까? 라는 의심에 빠진다. 그때부터 이 측량기사는 자신이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님을 농부에게 드러낸다. 물론 우회적인 방법으로. 대개 이런 식이다. 자신의 품 안에는 권총이 있다. 덩치 큰 사람 세 명을 제압한 적도 있다 따위. 농부는 그의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마차를 모는데 집중한다. 그러자 이 측량기사는 더 불안하다. 농부가 무슨 일인가 저지를 것 같다. 농부가 숲 속으로 마차를 몰려고 하자 그는 마차를 세우라고 하며, 역에서 이쪽에서 만나기로 한 친구가 있다고 말한다.
이 소설의 백미는 바로 이곳이다. 그러자 농부는 사람살려를 외치면서 마차를 버리고 숲속으로 도망가버린다. 농부는 측량기사가 자신을 해치기 위해서 권총이니 싸움이니 하는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측량기사는 농부가 버리고 간 마차를 타고 그냥 가버린다면, 자신은 도둑으로 몰릴 것이며, 수배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시간여 동안 농부를 애타게 부른다. 자신이 거짓을 말했음을 밝히면서. 그러자 농부는 돌아와 마차를 타고 그들은 다시 출발한다.
이 소설은 제목처럼 <기우>, 인간의 어떤 염려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측량기사는 농부가 자신을 해할까봐 두렵다. 그래서 자신의 힘을 과시하는 말을 한다. 반대로 농부는 측량기사가 자신을 죽이고 마차를 강탈할까봐 두렵다. 그래서 그는 마차를 버리고 숲속으로 돔아간다.
이 짧은 소설이 이런 반전을 보여줄 수 있는 건, 무엇보다 3인칭 초점화자의 시점에서 진행되기 때문일 것이다. 농부의 말과 생각은 전해지지 않기 때문에 독자들은 그의 생각을 알 수 없다. 그저 측량기사의 생각만을 따라가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작가가 말해주지 않더라도 농부의 생각은 없는 것은 아니고, 결국 농부는 마지막에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며 숲속으로 도망친다. 응축됐던 농부의 감정과 염려를 한꺼번에 보여주는 식이다. 고전적인 수법이지만 이 소설속에서는 꽤나 효율적으로 드러나있다.
덧붙여, 인간의 말하기란 그 문장과 텍스트 그 자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과 맥락에 맞는 숨은 뜻을 함께 전하는 것임을 다시 한번 느낀다. 측량기사가 한 말은 자신을 강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한 거짓에 불과했지만, 그는 자신이 거짓이라는 것을 밝히지 않았고, 의도를 숨겨 말을 하게 된다. 반대로 농부는 그의 말을 듣고 문장 자체의 이해를 넘어, 그것이 품고 있는 속뜻, 결국 자신을 죽이고 마차를 강탈하겠다는 그의 의도를 해석한다. 인간의 말하기란 그 아래에 담긴 속뜻을 주고받는 것. 그리고 그런 대화문을 쓰는 것. 많은 연습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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