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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에 물들다/내맘대로 책 읽기

간만에 현웃 터진 소설 「허클베리 핀의 모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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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소여의 모험으로 유명한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이제야 다 읽었다. 시작은 21개월 전에 했는데, 그동안 여러 가지 일로 바빠서 손도 못 대고 있다가 며칠 전에 다시 읽기 시작했다. 사실 이 아버지와 마을로부터 탈출하는 장면을 담고 있는 초반에는 좀 지루했다. 그래서 21개월 동안 이 책을 다시 읽을 생각을 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헉이 숨어 있는 섬으로 흑인 노예 짐이 찾아옴으로써 이 두 사람(헉과 짐)은 이제부터 그야말로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시작하게 된다. 이 소설의 진정한 재미는 바로 거기서부터 시작이다.


헉은 번듯한 가정에서 태어나지 못했다. 제대로 된 가정 교육을 받은 적도 없고, 그래서 스스로를 나쁜 아이"고 자책하는 아이다. 그런 헉이 뗏목을 타고 강을 따라 떠내려가면서 모험을 하는 동안, 맞딱뜨리게 되는 여러가지 사건들을 벗어나기 위해서 수시로 거짓말을 해대는 것. 그것이 이 소설이 출간 당시 엄청난 불온 서적으로 비판받은 이유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어린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자기에게 유리한 거짓말을 하는 건 당연한 모습이 아닌가. 그것이 옳고 그르다는걸 생각하기 전에, 그 것 자체가 있을만한 현상과 인물 자체를 잘 포착한 것이다. 그 전까지 다른 작가들은 이런 유형의 캐릭터를 생각해내지 못했으리라.



게다가 헉의 여행 동료인 흑인노예 짐은 어떠한가. 이 소설이 발표될 당시는 흑인 노예제가 아직 유지되고 있던 시절이다. 흑인은 그냥 주인에게 소속된 소유물에 불과했으며, 그들은 인간으로 취급받는 것이 아니라, 물건으로 생각됐다. 그래서 자신의 가족들이 뿔뿔이 다른 곳으로 팔려나간 짐은, 자신 또한 팔려나가게 될 위험에 처하자 도망을 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헉을 만나, 자유를 찾아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그의 자유도, 탈출로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앞둔 주인이 참회하며 "짐을 자유롭게 해주리라."라는 말로서 얻어진다.


마크 트웨인은 이 흑인노예 짐이라는 인물을 통해, 흑인들도 어엿한 인간이며, 오히려 그들이 오만하고 간악한 백인보다 더 인간적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여행 내내 짐이 보여준 순박하고 따뜻한 모습을 통해서. 이는 오히려 백인으로 등장하는 여러 사건의 악당들, 그리고 그 중 가장 나쁜 놈들인 '왕'과 '공작'의 이야기와 대비되면서 더 시너지를 낸다. 그러니까 흑인도 인간이라는 것. 소유물이 아니라는 것. 그들이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



민음사 버전으로 이 소설은 거의 600쪽에 가깝지만, 중반을 넘어가면 쉼없이 읽어내려갈 수 밖에 없을 정도로 재미있는 사건들이 줄지어 일어난다. 그 중 최고는 마지막인데, 어떤 마을에서 동네 사람들에게 들켜서 죄수 신분으로 갇혀 있는 짐을 구해내기 위해, 헉과 톰이 여러 가지 궁리를 하는 장면이다. 그동안 좋은 소설에 감탄할 줄 알았지, 재밌는 소설에 웃은 적이 언제인지 까마득하다. 그런데 이 마지막 장면을 읽으면서 계속 키득키득댈 정도로 재밌었고, 마크 트웨인이 쓰다가 "에라 모르겠다. 될대로 되라."라는 식으로 쓴게 아닐까 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미친 유머가 가득했다.


창고에 갇혀있는 짐을 구하는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저 열쇠로 문을 열고 짐을 데려가기만 해도 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톰은 그렇게 죄수를 구하는 법은 없다며, 자신이 읽은 모든 책에 나오는 죄수들은 그런 평범한 방법으로 탈출한 적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은 뱀과 쥐를 잡아 풀어넣고, 숫돌에 피로 괴상한 문구를 새기고, 벽에 자신들의 문양을 남기는 등. 정말 말도 안되는 일을 시작한다. 그건, 백인 가정에서 교육을 받고 자라난 톰을 통해, 허례를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면서도, 그러한 톰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헉과 짐의 모습이 대조된다. 게다가 그 장면에 걸맞는 절묘한 대사까지. 나는 정말 이 부분들을 읽으면서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현삼화는 반드시 눈물로 길러야 한다는 톰의 말에 황당해하며ㅋㅋㅋㅋㅋ>


<훔치다가 걸려서 급하게 모자에 숨긴 버터가 녹아내리자 뇌막염에 걸렸다며 걱정하는 장면ㅋㅋㅋㅋ>



<도망치다가 총에 맞았는데, 자신이 영화의 주인공이라도 된 것 처럼 기뻐하는 톰 ㅋㅋㅋㅋㅋ>



그리고 이 소설의 여러 주제 가운데 하나인, 노예 짐이 피부색은 검지만, 마음은 눈처럼 하얗다는 헉의 말까지.


이 소설을 읽으면서 참 좋은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유는 일단, 하나의 이야기를 너무 재밌고 그럴싸하게 잘 만들었다는 것. 또 하나는 그 안에 새로운 시각을 자연스럽게 녹여낸 것. 그 당시에 거짓말을 밥먹듯 하는 아이와 흑인 노예를 주인공으로 여행을 떠나는 소설을 떠올린 것 자체가 대단했을 것이다. 괜히 마크 트웨인이 현대 미국 문학의 출발점(해밍웨이says)이라고 불리우는 건 아닐 것이다.


이 소설은 헉과 짐이 뗏못을 타고 강 하류로 여행을 떠나는 플롯의 소설이기 때문에, 항상 새로운 마을에 도착해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사건을 접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나중에 내가 소설을 쓸 때, 새로운 공간이나 인물을 만날 때, 어떤 방식으로 처리하면 되는지, 그 소설적 기법을 배울 때 참고할 수 있는 좋은 예로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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