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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에 물들다/내맘대로 책 읽기

세계 3대 추리 소설, 엘러리 퀸의 「Y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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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3대 추리 소설 가운데 하나, 비극 4부작 중 두 번째 작품.


  엘러리 퀸의 추리 소설, 「Y의 비극」(The Tragedy of Y)을 읽었다. 이 책은 애거서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와 윌리엄 아이리시의 「환상의 여인」과 함께 세계 3대 추리 소설로 꼽히는 작품이라고 한다. 굳이 읽으려고 한 것은 아니었지만 우연히도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읽었기에 다음 작품은 「환상의 여인」을 한 번 읽어봐야 할 것 같다.


  또한 이 책은 엘러리 퀸의 소설 중 '드루리 레인'이라는 은퇴한 연극 배우가 나오는 추리 소설 4부작 가운데 2번째 작품이다. 엘러리 퀸이 불과 2년 사이에 써낸 4편의 장편 추리 소설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첫번째 작품은 「X의 비극 The Tragedy of X」 (1932년), 두번째 작품은 「Y의 비극 The Tragedy of Y」 (1932년), 세번째 작품은 「Z의 비극 The Tragedy of Z」 (1933년), 마지막 작품은 「드루리 레인 최후의 사건 Drury Lane’s Last Case」 (1933년)이다.


[아래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으니 원치 않으면 뒤로가기 버튼을 눌러주세요]


  이 작품은 요크 해터의 시신이 바닷가에서 발견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요크 해터의 시신을 확인하기 위해 시체안치소에 찾아온 그의 부인 애밀리 해터. 그녀는 시신에 대해서 몇 가지를 확인하고 남편임을 확인하고 집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얼마 후 해터가(家)에는 몇 차례에 걸쳐 살인 사건이 벌어지게 되는데.. 과연 샘 경관과 드루리 레인은 이 살인사건의 실체를 파헤칠 수 있을 것인가?


누구의 말을 어디까지 믿을 것인가?


  추리 소설을 읽다보면 독자들은 범인을 찾는 일에 열중하게 된다.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등장인물들이 하는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의심을 하게 되고, 누구의 말을 어디까지 믿을 것인가에 대해 고민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독자는 대부분 범인을 찾는 일에 실패하고 마는데, 그 대표적인 이유 중 하나는 독자는 작가가 보여주는 단편적인 정보만을 가지고 판단을 해야하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용의자들의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를 구별하는 것부터 어려움을 겪는다. 아쉽게도 이 소설도 그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살인 사건이 일어난 저녁, 응접실에 모인 샘 경관과 드루리 레인은 살인범의 정체를 밝혀내기 위해, 살해 현장에 있었던 루이자 캠피언를 심문한다. 하지만 이 루이자 캠피언는 장님에, 귀머거리에, 벙어리다. 책에 나온 표현대로 인간의 오감 중에서 시각, 청각이 전무한 상태. 결국 촉각, 후각만으로 단서를 얻는다. (미각은 맛본 일이 없으므로 제외한다.) 바로 손가락으로 얼굴을 만졌는데 매끈한 느낌이 났다는 것, 그리고 무언가 좋은 향, 즉 바닐라 향이 났다는 것이다. 자, 이제 독자들은 매끈한 얼굴을 가진 인물이 어떻게 바닐라향을 냈는지 추리해가야 한다. 하지만 독자가 이 추리의 과정에서 할 수 있는 건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왜냐하면 독자들의 분신인 탐정은 용의자들의 얼굴이 매끈한지 아닌지, 바닐라향이 나는지 아닌지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마지막에 밝혀지는대로 범인의 결정적인 단서는 루이자 캠피언이 앉은채로 얼굴을 만질 수 있을 정도의 작은 키의 소유자라는 점이다. 그리고 드루리 레인은 범인으로서 '재키 해터'를 언급하고, 살해 현장에서 범인은 키가 작을 것이라고 말했던 샘 경관의 말을 반박했던 자신들의 과오를 되짚어보기도 한다. 그 이후에 드루리 레인은 작은 키를 가진 사람이 범인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몇 페이지에 걸쳐 구구절절하게 설명한다. 하지만 왠지 그 설명은 독자들에게 와닿지 못하고 공중에 분해되는 느낌이다. 샘 경관이 처음 의문을 제기했을 때, 그리고 본인이 직접 아닐 수도 있다고 말했을 때, 독자들은 누구의 말을 믿어야하나? 무엇이 맞다고 생각해야할까?


특별하지 못한 등장인물들의 아쉬움


  이 소설에는 많은 등장인물이 나온다. 해터가(家) 사람들만 해도 9명, 그 집에 살고 있는 하인네 가족, 또 가정교사, 탐정, 변호사, 의사 등등. 샘 경관을 도와 보초를 서는 엑스트라급 경찰들의 수를 합하면 대충 20명이 넘는 등장인물들이 소설에 나온다. 하지만 왠지 너무 많은 인물들이 등장해서 소설의 초점을 흐리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든다.


  앞서 말한대로 독자들은 추리 소설을 읽을 때 범인을 찾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소설을 읽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독자의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소설을 읽으면서 범인으로 의심가는 등장인물들을 심문하는 과정과, 그 등장인물들의 말 속에서 논리적 모순이나 오류를 찾아내 범인을 유추하는 과정일 것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그런 면에서 독자들이 원하는 바를 채워주지 못하는데 그 이유는 두 가지 정도로 꼽을 수 있어 보인다.


  첫째, 개성적이지 않은 등장인물에 대한 아쉬움이다. 이 글에서 루이자 캠피언과 애밀리 해터를 살해하려고 했던 용의자는 여러명을 꼽을 수 있다. 일단 해터가의 사람들, 바바라 해터, 콘래드 해터, 질 해터와 그 외 며느리와 자식들. 그리고 해터가에서 일하는 하인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이다. 수많은 등장인물이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이들 인물들에 대한 작가의 설명은 그다지 많지 않다. 등장인물을 상황에 따른 특징적인 성격을 부여하긴 했지만, 이들이 사건의 현장에서 직접 살아있는 용의자로서 탐정들의 심문에 대답하는 등 상호작용 하는 모습은 거의 보이질 않는다.


  둘째, 용의자보다 탐정에 집중하는 소설 흐름에 대한 아쉬움이다. 범인을 찾고자 하는 독자들의 욕심을 채우려면 용의자들이 범행 시간에 무엇을 했는지, 그리고 어떤 알리바이가 있고, 어떤 허점이 있는지 말해주어야 한다. 탐정이 용의자들을 심문하고, 그 과정에서 독자들이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주어야 한다. 하지만 이 소설은 용의자들에게 집중하기보다는 사건을 파헤치는 탐정들에게 집중하여 사건이 전개된다. 독자는 그저 탐정들만 따라다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아쉬움이 남을 수 밖에 없다.


좋은 추리 소설이란 무엇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세계 3대 추리 소설이라고 꼽히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무엇보다 상황에 따른 자세한 묘사와 다양한 서술이 일품이다. 보통 추리 소설이라고 하면 핵심 플롯을 따라 스피디하게 전개되는 장르 소설을 떠올리는데 이 작품은 문학 소설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주변에 대한 묘사, 사람 심리에 대한 서술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독자들이 이러한 점에 주목하여 이 작품을 평가한다면 이는 분명히 엄청난 플러스 요인이 될 만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추리 소설이란 범인이 꾸민 거짓 알리바이가 밝혀지고, 범행의 전모가 드러날 때 느끼는 카타르시스가 제일이라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이러한 상세한 묘사와 서술이 사건의 흐름을 늘어뜨린다는 느낌을 받았다. 조금 더 스피드한 전개를 했으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어떤 책이든 읽는 독자에 따라 다른 평가를 받을 수 밖에 없다. 사람들의 생각이 다르듯 좋은 추리 소설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도 다를 수 밖에 없을 것이고, 무엇보다 많은 사람들이 세계 3대 추리소설로 꼽을만큼 인정 받는 소설이라면, 이 작품이 어떤 측면에서 충분히 검증받고 인정 받았다는 말이 된다. 개인적으로는 아쉬움이 남았지만, 이 작품을 읽어보지 않은 사람은 한번쯤은 읽어볼만한 작품으로 추천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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