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처럼 글을 쓰는 작가 장강명
표백(2011.7), 열광금지 에바로드(2014.10), 한국이 싫어서(2015.5), 그믐 또는 당신이 세상을 기억하는 방식(2015.8), 댓글부대(2015.11), 5년 만에 신혼여행(2016.8), 우리의 소원은 전쟁(2016.11). 장강명 작가가 낸 책들이다. 네이버를 통해 찾아보니 두어권 더 검색이 되긴 하지만, 그 책들은 읽어보지 않았으니 제외하고, 내가 읽어본, 그리고 문학상을 받으며 유명해진 책의 목록만 해도 이정도다. 이런 작가가 또 있나 싶다. 얼마되지 않은 짧은 시간 안에 이토록 많은 책을 낼 수 있다니. 정말 그는 그의 말대로 직장인처럼 글을 쓰는 작가임이 틀림 없다. 직장인이 노동하는 하루 8시간을 꼭 지켜 하루에 8시간은 반드시 글을 쓴다고 말하는 그의 이 압도적인 글의 생산량 앞에서 나는 다시 한번 나의 나태를 반성할 수 밖에 없다.
게다기 이번에 발표한 신작, '우리의 소원은 전쟁'이라는 책은 자그마치 500쪽이 넘어가는 장편소설이니. 그가 등단을 하고 유명해지고 나서도 얼마나 끊임없이 작품활동을 해왔는지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통일과도기의 북한의 모습은 어떠한가?
이 책의 제목은 '우리의 소원은 전쟁'이지만, 사실 책의 내용과 이 제목은 큰 상관이 없다. 이 소설은 남한과 북한이 전쟁을 일으키기 위해 공작을 하는 것도 아니고, 통일을 포기하고 전쟁을 하자고 역설하고 있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저 북한의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3대에 걸친 김씨 왕조가 몰락하면서 자본주의를 받아들이며 붕괴한 북한 체제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소설화해 놓았다. 물론 그 안에서 전쟁 같은 삶들이 펼쳐지지만 그 것은 우리가 '소원'이라고까지 말하기는 힘들다. 고로, 제목은 그냥 적당히 붙인게 아닌가 싶다. (물론 내가 파악하지 못한 뜻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건 당연한 지적이다.)
어찌됐든, 작가 장강명이 생각한 통일과도기의 북한의 모습은 크게 두 가지로 보인다. 첫 번째는 멕시코나 온두라스와 같은 마약밀매가 성행하는, 불법이 판치는 세상이 될 것이라는 전망. 두 번째는 그러한 정치, 경제, 문화 체제가 무너진 북한 땅에서 625이후 친일을 청산하지 못했던 우리 남한의 역사가 비슷하게 반복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장강명은 이 두 가지 생각에 기초해 마약을 밀매하는 북한의 모습을 길고 긴 이야기로 풀어냈다.
날개를 단 것처럼 가벼운 소설. 아쉬움이 느껴지는 뒷 맛.
소설은 날개를 단 것처럼 가볍고 빠르게 진행된다. 소설을 살펴보면 전체적으로 묘사가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인물이 처음 등장할 때, 그를 소개하는 짧은 묘사. 그리고 소설 곳곳에서 이루어지는 인물의 심리 묘사(하지만 이마저도 가볍고 경쾌하다)가 이뤄지지만 대체로 가볍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전체적으로 영화의 기법을 딴 것처럼 빠르게 훅훅 진행된다. 이러한 전개가 주는 효과는 탁월하다. 무엇보다 한 번 책을 손에 잡으면 좀처럼 놓을 수가 없다는 것. 나도 이 책을 잡은지 하루 만에 모두 읽어버렸다. 그만큼 책이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 읽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힘이 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자면 500페이지가 넘는 책이 하루 만에 읽어질 정도로 가볍게 쓰여졌다는 단점을 지적할 수 있겠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이 다양하고, 이들은 수많은 이해관계로 얽혀있지만, 정작 이들 사이의 촘촘한 인물 세분화나 갈등의 첨예한 대립 조성은 실패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쉽게 생각하면, 최태룡 일당(악), 장리철 일당(선), 그외 북한 마약업자(악)으로 읽혀지는 인물 구도다. 이러한 인물 구도의 조성은 독자에게 생각할 꺼리를 앗아간다. 쉽게 말해. 나쁜 놈은 나쁜짓을 하고, 착한 놈은 그것을 저지한다는 구도가 성립되는 것이다. 물론 그 안에 인물 간의 세세한 상황을 설정하고, 그에 따른 세세한 갈등들을 조성하긴 했으나, 그것들이 크게 부각되지 않음으로써 그러한 관계들은 하나의 거대한 갈등 사이에 묻혀버린다. 그냥 선악의 대결로 읽혀지는 것이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 악은 저물고, 선은 승리한다. 책을 읽고나면 한 편의 스피디한 영화를 본 것 같은 느낌이다. 마치 '제이슨 본'을 본듯한 느낌이다. 작가가 그것을 의도했다면 충분히 성공했다고 할만큼 스피디하게 소설이 흘러간다. 하지만, 좀 더 세심한 독자의 입장에서라면 무언가 아쉬움이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앞으로의 작품은 어떠할까?
분명 장강명은 부지런한 작가이지만, 그가 이전에 발표한 작품들은 분명히 생각할꺼리를 충분히 제공했다. 쉽게 읽히면서도 다 읽고 났을 때, 무언가 마음 속에 남게 했다. 표백이 그랬고, 한국이 싫어서가 그랬고, 그믐이 그랬고, 댓글부대가 그랬다. 그런 전작과 비교했을 때, 이번 작품은 아쉬움이 남는 것이 사실이다. 작가가 배경을 통일과도기의 북한을 설정하고 이야기를 전개했지만, 사실 이 공간적 배경이 북한이 아니라, 중국이나 일본, 인도나, 심지어 미국이라고 해도 딱히 위화감이 없을 정도로 장소가 갖는 의미는 미비하다. 그러니까 이 소설이 통일과도기의 북한의 모습을 그렸다기보다는 그냥 마약 밀매에 관한 한편의 액션 소설을 그려낸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물론 이 작품을 직접 고안하고,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수없이 읽었을 작가가 이것을 모를리 없다. 내가 읽을 수 없는 어떠한 의도를 갖고 만들었을 것이 분명할 것이다. 하지만 나로서는 앞으로 장강명 작가의 작품을 선택하는데 한 번은 고민해볼만한 여지를 만들어주지 않았나 싶다.
장강명 - 우리의 소원은 통일 (예담, 2016.11.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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